‘증세 없는 복지’ 함정…소리없이 ‘간접세’ 부담 늘어

담뱃세 인상해 간접세 올렸지만…
소득 재분배하는 직접세는 못 건드려
자본소득세 강화·법인세 인상 등 과제
  • 등록 2016-08-21 오후 2:43:18

    수정 2016-08-21 오후 5:31:02

서울 도심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판매대의 담배를 꺼내고 있다. 지난해 담뱃세는 10조5000억원이 걷혔다. 이는 법인세(45조)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간접세보다는 직접세를 늘려 소득 재분배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서울 당산동에 사는 3년차 직장인 백상원(가명·32)씨는 매달 9만1000원을 소득세와 지방세로 직접 내지만 월급 330만원에 비하면 3% 수준이라 크게 부담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씨가 내는 세금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아침에 샤워할 때 쓰는 치약, 칫솔, 샴푸 등에는 10%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부가세는 생산 및 유통 과정의 각 단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에 대해 매겨지는 조세로 대표적인 ‘간접세’다.

점심 저녁 식사에도 모두 부가세 10%가 붙는다. 저녁 식사 때 곁들이는 반주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세금이 물린다. 소주의 경우 공장 출고가의 72%가 주세로 붙는다. 주세액의 30%는 또 교육세가 붙고, 물론 전체 금액에 대한 부가세가 따라간다. 한달에 8병을 먹으니 대략 1만5000원 정도 세금을 낸다. 백씨가 하루에 한갑 피는 담배에도 소비세, 지방교육세, 부가세 등 3318원이 붙는다.

이런 간접세를 백씨는 한달에 대략 20만원가량 낸다. 직접세보다 2배는 많은 규모다. 백씨가 실제 부담하지만 납부는 다른 사업자가 대신 내주는 터라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금’인 간접세의 특징이다.



◇간접세 ‘주범’ 담뱃세..올해 13조 전망


우리나라 간접세 비중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 발표한 직·간접세 비중 국제비교(2011년기준)를 보면 직접세 비중은 미국(75.3%), 스위스(70.5%), 일본(68.1%)에 비해 한국은 54.8%에 그친다.

21일 인천대 경영학과 홍기용 교수(전 세무학회장) 연구팀이 2014년 이후 직·간접세(국세+지방세) 비중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1~2년차에 직접세 비중이 소폭 오르긴 했지만 3년차부터는 다시 간접세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직접세 비중은 54%로 2013년보다 1%포인트 늘었지만 2015년에는 다시 52~53%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간접세 비중이 높아지는 데는 담뱃세 인상의 영향이 가장 컸다. 정부는 국민 건강 증진을 이유로 2015년부터 한갑당 1550원에 불과한 담뱃세를 3318원으로 올렸다. 이로 인해 연초 담배소비가 주춤하기도 했지만 하반기부터 반출량이 원년수준을 회복했고, 지난해 세수는 전년보다 3조5600억원이나 늘어난 10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법인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상당한 금액이다.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에는 13조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홍 교수는 “흡연율은 오히려 줄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담뱃세가 세율 조정 전과 비교해 6조 이상 더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면서 “이는 전체 세수의 2%이상 차지하는 수치로, 소득세나 법인세에 대한 세율 조정이 없었기 때문에 간접세 비중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역진적 세제’ 간접세…소득재분배 악화

문제는 간접세는 소득 재분배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직접세와 달리 소득이나 자산 규모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이 매겨지지 않기 때문에 ‘역진적 세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높은 조세가 부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5000원짜리 햄버거를 먹어도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500원(10%)의 부가세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자가 소비를 더 많이 하겠지만, 누진적으로 직접 세율을 부과하는 것에 비하면 효과가 적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년 개편안에 직접세 세율을 조정하는 방안은 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에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2014년 소득세 평균 실효세율은 5.0%로 OECD 평균인 15.6%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물론 정부는 2013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돌리면서 각종 공제 혜택을 줄였다. 하지만 금융·부동산 등 자본 소득에 대한 과세 비율을 올리기 보다는 맞벌이 부부 등 중산층 근로자의 세부담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했던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는 찔끔 올리는 수준에 그쳤다.

MB정부 때 대폭 감소했던 법인세도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2014년 법인세 실효세율은 명목세율(22%)보다 크게 낮은 15.05%에 불과하지만, 법인세 인상은 ‘성역’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직접세와 간접세에 대한 전반적인 세율 조정없이 공제 혜택을 일부 줄이거나 늘이는 방식만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조세의 근본기능인 소득 분배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라며 “정부가 정권말이라고 눈치를 보고 있지만, 국회에서 근본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직접세 비중을 좀더 늘리는 세제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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