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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14일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한학과 전통적인 종교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이 이어지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부친이 낙선한 뒤로는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부산공고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던 고인은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소속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폐결핵이 치유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목사는 1956년 9월 20세 나이에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고(故) 최자실 목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 18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이었다.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1979년 10만 명, 1981년 20만 명을 넘더니, 1993년 교인수 70만 명을 돌파해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 기간 해외 주요 언론들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 비결을 소개했는데, 이로 인해 고인은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으로 여겨졌다.
1976년에는 세계교회성장기구(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를 설립해 세계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던 고인은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며 제3세계 선교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때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에서 대규모 성회를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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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목사는198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해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재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힘썼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대통령 표창’(홀트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을 수상했다.
이밖에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대한적십자사), ‘국민훈장 무궁화장(보건복지부)’,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미 연방의회), 캄보디아 정부 훈장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4차원의 영적세계’ 등이 있다.
부인 고(故) 김성혜 전 한세대 총장은 올해 2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희준·민제·승제 세 아들이 있다.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차려졌다. 조문은 15∼17일 오전 7시∼오후 10시 할 수 있다.
천국환소예배(장례예배)는 오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열리며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설교한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인 장종현, 이철, 소강석 목사가 맡았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