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리더-19] “노력하면 여성에게도 기회가 옵니다”

  • 등록 2012-08-21 오전 10:36:33

    수정 2012-08-22 오전 11:13:23

[이데일리 강경지 기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 비주류다. 세상이 바뀌어도 출산과 육아 등 부담이 여전하다. 이데일리는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당당한 인적자원으로서 기여할 부문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여성 리더 30인에게 듣는다’ 를 연재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의 길’을 도모해 성공한 여성 리더가 풀어내는 삶의 지혜를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성별과 상관없이 기회가 오는 것 같습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난 김홍희(64)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닌다. 2005년 여성 최초로 광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을 맡았으며 이듬해 경기도 미술관 초대 관장을 지냈다. 올해 1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이래 첫 여성 관장으로 임명됐다.

스스로 여성이라고 해서 불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늦깎이 미술학도였지만 남들보다 치열하게 공부한 덕에 서울시립미술관장직까지 올랐다. 김 관장은 결혼 후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남편의 권유로 서른에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79년 당시 뉴욕 총영사관 한국문화원 문정관이던 남편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 원장(전 쌈지길 대표)을 따라 뉴욕을 간 이후 본격적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두 남자 후원 덕에 미술계 수장으로 우뚝

돌이켜보면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미술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남편 천호선 원장과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이끌어 줬기에 가능했다. 힘들어 좌절할 때마다 남편은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살림보다 미술 공부에 신경을 더 썼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백남준은 미술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김 관장은 1980년 미국 뉴욕 실험예술 공연장인 ‘키친’에서 작품 발표를 하던 백남준을 처음 만났다. 백남준은 캐나다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김 관장을 심포지엄에 초대해 국내외 미술계에 얼굴을 알릴 기회를 줬다. 또 김 관장의 석사논문 번역을 도왔으며 1995년 광주 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일할 기회도 줬다.

그는 “백남준 선생님이 주신 여러 기회 덕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백 선생님을 통해 아방가르드(전위예술)가 무엇인지 알게 됐고 일상과 예술을 통합하는 아방가르드도 엿보게 됐죠. 또 예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열함과 추진력도 배웠습니다”고 말했다.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승부

김 관장은 1990년대들어 국내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일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남성중심의 사회라서 미술 전문가로서의 김 관장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가정주부 출신’, ‘누구의 아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페미니즘이 보편화됐지만 제가 처음 일할 때만 해도 제가 공부하고 있는 장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누구의 와이프 혹은 가정주부 출신이라고 소개할 때는 기분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아내가 아닌 저 자신을 제대로 봐줄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나 환경을 탓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여성이 가진 섬세함을 무기로 삼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보니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경험에서 나오는 배려심과 부드러움 등이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남성들이 간과하는 작은 부분을 볼 수 있었거든요. 이런 부분을 미리 볼 수 있어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누구든 남모르는 노력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은 권력구조에 얽매여 변화와 혁신에 머뭇거리지만 여성은 권력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보니 진취적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미술계는 ‘여인천하(女人天下)’다. 김 관장을 포함해 정형민(60)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영나(61)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등 국내 3대 국공립박물관·미술관의 수장이 모두 여성이기 때문이다.

“유능하면 여성도 중요한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 같습니다. 저는 여성할당제 채용을 반대합니다. 여성도 스스로 부족한 점을 채워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기회가 오고 사회구조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립미술관을 국제적 수준으로

김 관장은 국제적 수준의 서울시립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취임하자마자 조직을 개편, ‘변화와 혁신’을 꾀했다. 전시과를 글로벌 전시팀과 미술소통프로젝트팀으로 나눴다. 글로벌 전시팀은 국제적인 전시를 담당하기 위해, 미술소통프로젝트팀은 미술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신설한 팀이다.

“그동안 시립미술관이 외부 기획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했다면 앞으로 자체 기획을 늘릴 계획입니다. 아름다운 미술관, 똑똑한 미술관, 스마트한 미술관, 국제적이면서도 시민을 위한 미술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김홍희 관장

1948년 서울 출생.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콩코디아(Concordia) 대학에서 서양미술사 석사, 홍익대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정보예술 큐레이터(1995), 쌈지스페이스 관장(1998~2008), 광주비엔날레 총감독(2005~2006), 경기도미술관 관장(2006~2010)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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