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④백경호 주은투신 사장(하)

  • 등록 2001-03-30 오후 1:30:10

    수정 2001-03-30 오후 1:30:10

[edaily]“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이번주 주인공은 백경호 주은투신운용 사장입니다.(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채안기금에서 같이 일한 매니저가 몇분이죠. ▲4명이었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시각들이 다양해야 해요. 매니저들을 보면 각각 특성이 달라요. 분석을 잘하는 사람, 브로커들과 잘 싸우는 사람, 말로 브로커들을 잘 다루는 사람, 인적 네트웍이 폭넓은 사람 등등.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해서 다양한 구성을 해야만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활발한 토론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야 저한테도 다양한 정보가 보고될 수 있고요. -지금도 팀을 구성할 때 그런 기준 하에서 고릅니까. ▲물론입니다. -각각 다른 기관에서 온 펀드매니저들이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또 자기회사의 이익과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 뭐 이러한 문제들이 논란이 됐었는데…어떻게 관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매니저들을 불러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나도 모르고 당신들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 사명감을 가지고 한 번 해보자. 사명감을 가지려면 우리부터 깨끗해야한다”고. 깨끗해야 한다는 의미는 이겁니다. 매일매일의 장이 종료되면 그 사람들이 소속된 은행의 임원들이 틀림없이 이것저것 전화로 물어볼 게 뻔히 보이거든요. 자기은행의 자산이 걱정되니까 당연히 전화하겠죠. 오늘 어떻게 됐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물으면 이 사람들이 대답을 안 해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장 종료 후 오늘 상황이 어땠다는 그 얘기를 해주는 것은 막지않겠다. 대신 사전에 미리 당신이 어떻게 운영할 것이라는 의사를 알려주거나 당신의 의사를 내게 관철하려고 애쓰지는 마라. 모든 최종결정은 내가 한다.” 이렇게 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전체적으로 잘 따라줬어요. -당시 4명의 펀드매니저들은 지금 뭐하시나요? ▲3명은 펀드매니저를 계속하고 있고 한 사람은 새롬기술에 가서 자산운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채안기금을 운용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채안기금의 기본적인 발의 자체가 시장이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자하는 정부의 의지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금리가 일시적으로 오르면 불안하니까 거기에 관해서 많은 푸쉬를 했거든요. 그런 부분을 토론을 해나가야만 하는게 힘들었습니다. 또 10조라는 자금이 너무 작다보니 이것을 늘려야했지만 자금조성 문제에 있어서 벽이 많았어요. 여기저기서 반대하고. 뭐 그러한 점들이 어려웠었죠. -그 돈들 다 나눠주셨죠? 기금을 청산했을 때 이익이 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 나눠줬습니다. 그 때 이익이 조금 나긴 했는데… 시장이 완전히 안정화된 상황이 아니라서 이익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어요. “시장정상화의 키가 채안기금의 소멸이라고 생각했다” -채안기금 막바지 시절 만났을 때 “이제 다시 여의도로 돌아가야죠” 라고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 정도 했으면 발을 빼겠다’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청산 즈음에 실제로 그런 의도를 윗분들에게 전달한 겁니까? ▲더 이상 끌고가기 힘들다는 것 보다는 시장에 관한 시각의 차이가 좀 있었죠. 채안기금의 존속 자체가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하는 판단의 문제로 말입니다. 채안기금이 만들어진 이유는 대우사태 이후 침몰해가는 투신권이 자신들의 매물을 내놓으면 어디선가는 받아줘야한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투신권의 수탁고가 바닥을 찍고 주춤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그러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거에요. 그런 상황에서의 존속이유라는 것이 애매했습니다. 시작당시의 목표가 시장붕괴를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시장의 실패를 막은 다음에는 다른 목표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바로 시장의 정상화죠. 저는 시장정상화의 키가 채안기금의 소멸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매매를 할 때 채안기금 같은 공룡이 있으면 거기만 쳐다볼 것은 뻔하잖아요. 단기적으로는 채안기금에 기댔던 시장심리가 붕괴되면서 금리가 오를수도 있겠지만 공룡 자체를 없애주는 것이 시장을 위해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본 겁니다. 김정태 행장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시고 반대하는 다른 분들을 잘 설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채안기금이 문을 닫고 금리가 실제로 올랐었죠. ▲조금 리바운드한 건 사실입니다. -채안기금 일을 모두 끝내놓고 이사로 승진하신 건가요. ▲이사승진은 채안기금에 있을 때 했습니다. -그때가 작년 초, 재작년 말 무렵이었죠? 그 당시의 채권시장을 어떻게 보셨나요. 금리가 내려간다 올라간다 말들이 많았는데요. ▲채안기금이 존속했을때는 채권을 운용하는 기관들이 펀더멘털에 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채안기금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관해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뭘 고민해야 될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 금리가 8-9%가 되면 상당기간 횡보하는 장세가 지속됐었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경기가 급격히 식으리라고 아무도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채권금리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만 시중의 유동성 측면에서 봤을 때 금리가 하락할 요인이 충분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우리 주택은행이나 다른 기관도 모두 채안기금이 없어지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데 두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메이저기관들의 모양이 우습게됐었죠. 채안기금에 출자를 해놓고도 거기다 자기 채권을 많이 팔아먹었거든요. 근데 어느날 그대로 그 채권이 자기한테 고스란히 돌아왔으니…허허..그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감각에 대한 혼란이 많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감각을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겠습니다. 채안기금을 직접 만들고 해체시켰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채안기금을 맡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배타적인 이익을 향유한다는 자체가 이익보다는 잃을 것이 훨씬 많거든요.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들은 회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주택은행으로 되돌아와서 바로 채권을 사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채안기금을 해체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인위적으로 금리를 끌어내린다고 말입니다. 시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하면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채안기금 운용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습니까. ▲이건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웃음) 사람들은 채안기금 운용인력들이 눈코뜰새없이 바쁠 것이라 생각하시던데 운용을 안 하는 날은 사무실이 온통 수면실 분위깁니다. 시장도 전혀 안 보고.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시장을 보고있으면 우리가 보는 만큼 시장도 우리를 쳐다보게 되니까 볼 수가 없어요. 그래야만 우리가 없을 때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체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부러 사흘 정도 안 할 예정을 잡아놓고 출근만 하고 쉬는 분위기를 만들었죠. 물론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직원들이 그 상황이라고 편안히 쉴 수는 없었겠지만요. 이런 일도 있습니다. 브로커들이 저희에게 접대를 많이 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접대를 받을 수는 없고 오후되면 출출하니까 피자나 얻어먹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매일 피자를 시켜도 5일뿐인데 전 증권사에서 다 피자를 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피자 받는 곳을 선정하려고 하니 다들 섭섭하다고 난리였어요. 왜 우리 피자는 안 받아주냐고. 하하 -제비뽑기라도 하시죠.(웃음) ▲그런 이유 때문에 채안기금을 접은 후 저희들에게 피자를 보내준 증권사들에게 운영수익금으로 다시 피자를 세 판이나 돌렸습니다. 하하 “채안기금을 통해 시장을 크게 보는 훈련을 했다” -채안기금을 운영했던 경험이 주은투신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까. 아니면 그냥 그런 재미있는 일도 한 적이 있다라고 기억되는 정도입니까. ▲시장을 크게 보는 훈련을 했으니까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됩니다. 채안기금의 기본임무가 채권시장 전체를 방어하는 것이니까요. -은행권 최연소 이사가 되고 난 후 보이지 않게 견제도 많이 받았을 것 겉은데. ▲제가 처음에 은행에 갔을 때 제 나이또래가 대리직급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관록이 일을 해줘야하는데 가능하겠냐”는 우려를 많이 하셨습니다. 견제라는 표현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우려섞인 시각으로 저를 쳐다보시는 분들은 좀 있었죠. -그게 행동의 제약이 되던가요. ▲자산운용을 잘 하는 문제는 제가 시장하고 얘기하는 것이지 내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부적인 문제는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 거기에 맞게끔만 행동하면 되는거고. 금융기관이 보수적이니 대부분의 금융인들이 직장상사와 나이가 일치하는 조직에서 일을 해온 건 사실입니다. 지금 주은투신에서도 나이가 더 많은 직원들이 있지만 이것은 분리해서 생각하면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좋은 펀드매니저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지금은 딜을 전혀 안 하시나요. ▲딜을 손에서 놓은지는 꽤 됐고..시장은 항상 보고 있습니다. -‘좋은 채권펀드매니저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 고 후배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주신다면. ▲일단은 공부를 많이 해야죠. 우리 매니저들도 전반적인 시장분위기가 트레이딩에만 치우쳐 있어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근본적인 것부터 공부를 많이하는 매니저가 결국 좋은 매니저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채권시장이 선진국, 특히 미국의 시장을 따라가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기 위해선 미국시장의 펀드매니저들을 열심히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스타일의 부하직원을 높이 평가합니까? ▲자신의 철학, 소신을 가진 사람들. 펀드매니저는 이코노미스트나 스트레티지스트가 아니잖아요. 기본적 소양 이외에 펀드매니저만의 감성적인 자질들이 뛰어난 사람들이 우수한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채권관련 저서를 저술할 생각은 없는지. ▲물론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번듯한 채권교과서 하나 없잖아요. 채권시장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은 바로 한국 채권시장을 “우리들만의 리그”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나요. 몇 안되는 채권브로커가 좌지우지 하는 상황 아닙니까. 이 커뮤니티가 개방적이지 못하단 말이죠.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리그 그 자체에요. 외환딜러들만 해도 이쪽보다는 훨씬 유연합니다. 주식이야 뭐 대한민국 국민 자체가 주식전문가니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채권시장은 그 누구도 채권관련 이론이나 실무를 널리 보급하고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안 했어요. 채권종사자들 모두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CEO로 재직하는 동안 꼭 이뤄보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사실 저희는 토종자본도 아닙니다. 신문에 외국자본에 잠식당한 국내시장..뭐 이런 기사도 나곤 하는데 ING와의 관계는 그런 면보다는 그야말로 전략적인 제휴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외국사람들이 와서 “당신들도 이 정도로 일한다니 놀랍다” 뭐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똑똑한 한국사람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조직체계만 만든다면 나머지 문제점들은 쉽게 쉽게 풀려나가리라 생각합니다. (백경호 사장 약력) -61년 부산 출생 -동래고 졸업 -86년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88년 부산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87년12~92년4월 동원증권 -92년4월~97년6월 SK증권 -98년10월 주택은행 -2000년2월~6월 주택은행 자본시장본부장 직대 -2000년6월 주은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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