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th SRE]한국 기간산업 무너지나

[커버스토리]중화학 중심 산업구조 한계 직면
건설, 조선, 철강, 해운 등 기간산업 '위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 '샌드위치'..업종 구조조정 필요
  • 등록 2013-05-23 오전 11:30:00

    수정 2013-05-23 오후 1:55:39

[이데일리 김세형 기자] 새 정부 들어 여기서도 창조경제, 저기서도 창조경제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식 거론한 뒤 7개월이 지났어도 헷갈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존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무언가로 바꿔야 한다는 것만큼은 기본 전제로 깔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상하고 실천에 옮긴 중화학 중심의 산업구조가 한계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장기간의 글로벌 경기침체와 원화강세는 국내 기간산업의 경쟁력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GS건설의 실적 쇼크에서 보듯 우리나라 건설업의 해외 수주는 속빈 강정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조선은 중국의 부상에 더해 절치부심해온 일본이 기업 간 합종연횡과 엔저를 무기로 고개를 쳐들면서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화학은 중국에 비해 여전히 경쟁 우위를 갖고 있지만 신선 노름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철강은 개별 기업은 훌륭할 지 몰라도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와중에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은 우리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딱히 투자할 만한 매력을 느끼는 기업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현재 우등생일 수는 있어도 언제든 중간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런 기미를 보이고 있어서다. 창조경제 구호가 아니더라도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려온 중화학 기간산업에 대한 리모델링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란 뜻이다.

GS건설이 일깨워준 현실

지난 4월10일 오후 5시가 10여분 지났을 무렵 슬그머니 실적 공시가 하나 올라왔다. 이 공시 하나가 한국 수주 산업 전반에 걸쳐 심학한 우려를 자아낼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공시 내용을 들여다본 증권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흑자를 의심치 않았던 GS건설이 거꾸로 5000억원대의 대규모 손실을 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에 예상치 못했던 성적표를 받아든 애널리스트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도 믿었던 해외 사업장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니.

GS건설의 어닝 쇼크로 해외 사업장이 빈 껍데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졌다. 그간 증시를 눌러 왔던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했지만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부터 GS건설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고, 건설업종을 넘어 해외 수주가 많은 조선과 화학, 그리고 실적 우려가 있는 곳이라면 업종을 불문하고 피해 가지 못했다. 미국 월가에서 한국 수주산업 전반에 걸쳐 물량을 축소키로 했다는 루머까지 나와 더욱 흉흉했다.

국내 건설사들의 실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추락하면서 건설사들이 숱하게 쓰러져 가는 것을 봐 왔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 때문에 그룹이 아예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국내에만 목매는 곳은 여전히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라건설은 무리하게 자회사 만도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로 하면서 지배구조 리스크까지 불거진 상태다.

GS건설이 주는 시사점은 최후의 피난처이자 신성장동력으로 믿었던 해외 사업을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이냐는 의문을 던진 점이다. GS건설뿐 아니라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 국내 대표 건설사들은 그간 해외를 돌파구 삼아 불황 속에서도 선전해 왔다. 이에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들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어 왔던 터였다.

하지만 그게 실상은 아닐 수 있다라니. 삼성엔지니어링마저 기대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내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대림산업이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부랴부랴 내놨지만 우려는 여전했다.

조선과 중공업, 화학 등 국내 기간산업들 역시 주로 해외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조선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를 만드는 도크를 비워 둘 수 없다면서 저가 수주한 물량이 상당한 실정이다. 건설에서 시작된 의심이 이들에게로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대 기린아 STX의 몰락

사실상 산업은행 관리에 들어간 STX그룹은 2000년대 우리 재계의 최고 스타다. 강덕수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 존폐위기에 처했던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뒤 조선과 해운, 건설 등 각 분야 업체들을 인수합병, 10년 만에 재계 11위의 기업집단으로 성장시켰다.

‘엔진(쌍용중공업)을 만들다 보니 조선(STX조선해양)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직접 배를 몰아보고 싶어졌다(STX팬오션)’는 말은 STX의 성장 과정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태엽은 감겨 버렸다. 해운 시황이 좋지 않아 배를 발주하지도 않았고, 배 역시 만들 일이 줄었다. 여느 대기업 치고 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건설 역시 부동산 경기 침체에 제대로 엮었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과정에서 일으킨 차입이 쇠락의 결정타로 지목되고 있다. 경쟁력 면에서도 약점이 없지 않다. STX그룹은 B급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력이 크게 앞서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 등 신흥국가처럼 저임금의 혜택을 받아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눈을 돌려 보면 STX그룹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끼여 있다는 샌드위치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여전한 가운데 중국의 추격은 무섭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조선업종은 지난 2001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조선수출 1위에 올라 11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이 392억 달러를 기록한 반면 우리는 378억 달러에 그쳐 결국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전세계 선박수주점유율에서도 우리나라는 전세계 수주량의 35.0%를 차지, 중국(33.3%)에 1.7%포인트 차이로 쫓기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역습마저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엔저도 버거운 판에 일본내 대형 조선사들 사이에 합종연횡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철강은 이미 중국업체를 제외하고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처지다. 지난해 중국업체들의 조강생산량은 7억 1650만 톤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세계 10대 철강업체중 6곳이 중국업체다.

포스코는 세계 5위권으로 손에 꼽히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 호황기 추진했던 인수합병(M&A) 전략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지난해 말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명성에 흠집이 났다. 효자 노릇을 했던 조선업마저 수익성 위주 수주로 전환하면서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무엇보다도 중국 철강업체 대부분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힘든 국영 기업이라는 점이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라며 “향후 수십년간 설비과잉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중국의 성장 수혜를 한 몸에 받아왔던 화학 역시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동과 중국의 석유화학기업들이 지난 10년 동안 초대형 신규 설비를 가동하면서 규모에서는 이미 우리 기업을 크게 앞질렀다”며 국내 석유화학 업체 간 구조조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화학업종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손쉽게 이익을 취해온 측면이 없지 않다”며 “셰일가스와 같은 에너지원 변화 등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시멘트 vs 한국 시멘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미 여러 기업에 메스가 가해졌지만 앞으로 더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주목받는 것은 개별 기업별로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업종 전체를 바라보고 구조조정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 대상 업종에 속한 어느 대기업을 막론하고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 산업은행을 구조조정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시멘트 업종을 예로 보면 더욱 그렇다. 일본은 1980년대말 부동산 거품이 꺼진 뒤 건설부동산 관련 분야에서 대대적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시멘트 역시 그랬다. 현재 일본 내 1위 시멘트 회사 입지를 갖고 있는 태평양시멘트는 1990년대 초중반 3개 업체가 순차적으로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시멘트업계는 이를 통해 환골탈태에 성공, 태평양시멘트가 지난 2000년 국내 1위 업체인 쌍용양회를 인수할 정도까지 됐다.

국내 시멘트 업계는 부동산 경기가 꺾이기 전인 지난 2005년 이후 실적이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늘렸던 설비가 남아 도는 상황에서 1, 2개 업체가 공격적 마케팅에 나서자 업계 전반이 동반몰락의 늪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근 8년 넘게 지속됐는데도 구조조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레 가격이 인상돼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한 요즈음에서야 인수합병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시멘트 업계 구조조정은 사실상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 시절 뼈를 깎으며 산업 전반적으로 진행했던 산업 합리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혜와 독과점 논란은 차치하고 현대차는 기아차를 품에 안은 덕에 결과적으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하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기아차가 현대차그룹의 품안에서 투자 여력을 갖게 되면서 나름대로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을 비롯해 이미 대형업체 몇 곳으로 압축된 업종은 독일차처럼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도 “업체들이 여전히 난립하면서 구조조정이 어려운 업종이라면 속도가 매우 더딘 민간에 맡겨 두기보다는 정부가 산업은행을 수단으로 삼아 업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7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7th SRE는 2013년 5월15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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