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03일자 32면에 게재됐습니다. |
남의 나라 얘기에, 개인간 흥정이 아니냐고? 천만에 말씀이다. 거래는 국가규모급도 있다.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투자해 열 군데서 일자리를 창출하면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50만달러가 투자비다. 또 유럽연합은 탄소배출시장을 운영해 기업들이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챙겨준다. 1톤에 13유로.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돈으로 사면 안 되는 것이 있는가.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59) 하버드대 교수가 신작을 냈다. 이번엔 `시장과 도덕`이다.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와 시장만능주의의 맹점을 파헤친다. 절대선으로 취급받는 시장가치가 공공선을 훼손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거다. 개인관계·교육·건강·환경·스포츠·심지어 죽고 사는 문제에까지 돈과 시장은 영역을 넓혔다. 그렇다면 과연 시장은 옳은가.
가령 한 어린이집은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가 많아지자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어느 학교에선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푼돈을 쥐어줬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죄책감에 면죄부를 얻은 부모들이 늦게 오는 횟수는 더 늘어났고, 아이들은 독서를 용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게 됐다.
`새치기`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이 돈이다. 공항·놀이공원·병원대기실 등에서 행해지는 `선착순` 줄서기윤리가 `돈을 낸 만큼 획득한다`는 시장윤리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볼 때 사람을 고용해 대신 줄을 세우거나 암표를 파는 `새치기`는 잘못이 아니다. 거래 결과, 구매자·판매자 모두 행복해지고 효용이 증가하지 않냐는 거다. 자유시장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역설하는 그 논리다. 그러나 도덕성 측면에선 문제다. 웃돈을 얹고 줄서기 대리인을 쓰는 비용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겐 불공정한 행위인 거다. 샌델이 볼 때 시장은 경제학자의 확신처럼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게다가 재화의 특성까지 변질시키는 힘까지 키우고 있다.
마이클 샌델, 이 철학계의 대스타가 다시 정착한 곳은 `공동체적 생활`이다.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의 정의관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시장만능주의에 빠진 가치추구 방식은 곤란하단 말이다. 그가 볼 때 시장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