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얼마면 살 수 있나

`정의` 신드롬 샌델 교수
시장만능주의 현실 비판
영주권·감방·새채기권리 등
돈으로 사고 파는 영역 늘어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336쪽|와이즈베리
  • 등록 2012-05-04 오후 3:40:44

    수정 2012-05-04 오후 3:40:54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03일자 32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세상에 돈으로 못 사는 것이 있을까. 거의 없다. 최소한 여기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연회비 1500달러를 내면 전담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딸 수 있다`. 당일 진료서비스를 받는 건 물론이다. 만약 교도소 수감자라면 쾌적한 감방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1박에 82달러 추가비용을 지불하면 말이다.

남의 나라 얘기에, 개인간 흥정이 아니냐고? 천만에 말씀이다. 거래는 국가규모급도 있다.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투자해 열 군데서 일자리를 창출하면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50만달러가 투자비다. 또 유럽연합은 탄소배출시장을 운영해 기업들이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챙겨준다. 1톤에 13유로.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돈으로 사면 안 되는 것이 있는가.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59) 하버드대 교수가 신작을 냈다. 이번엔 `시장과 도덕`이다.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와 시장만능주의의 맹점을 파헤친다. 절대선으로 취급받는 시장가치가 공공선을 훼손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거다. 개인관계·교육·건강·환경·스포츠·심지어 죽고 사는 문제에까지 돈과 시장은 영역을 넓혔다. 그렇다면 과연 시장은 옳은가.

결론적으로 말해 샌델의 주장은 이렇다. “시장거래가 도덕적·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면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허용해선 안 된다.” 근거는 최근 수십년 동안 변화한 사회형태에서 찾았다.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세상은 `시장경제`에서 `시장사회`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부를 창출하는 도구였지만 시장사회에서 시장은 인간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생활방식이다. 당연히 가치가 변질될 수밖에 없다. 기존에 거래가 없던 곳에 돈과 시장이 개입하면서 생긴 이상현상이다.

가령 한 어린이집은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가 많아지자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어느 학교에선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푼돈을 쥐어줬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죄책감에 면죄부를 얻은 부모들이 늦게 오는 횟수는 더 늘어났고, 아이들은 독서를 용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게 됐다.

`새치기`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이 돈이다. 공항·놀이공원·병원대기실 등에서 행해지는 `선착순` 줄서기윤리가 `돈을 낸 만큼 획득한다`는 시장윤리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볼 때 사람을 고용해 대신 줄을 세우거나 암표를 파는 `새치기`는 잘못이 아니다. 거래 결과, 구매자·판매자 모두 행복해지고 효용이 증가하지 않냐는 거다. 자유시장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역설하는 그 논리다. 그러나 도덕성 측면에선 문제다. 웃돈을 얹고 줄서기 대리인을 쓰는 비용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겐 불공정한 행위인 거다. 샌델이 볼 때 시장은 경제학자의 확신처럼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게다가 재화의 특성까지 변질시키는 힘까지 키우고 있다.

희망은 문제의식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끄집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맥놓고 당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만능주의가 지난 수십년간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도덕적 믿음을 공공의 장에 드러내 보이기를 두려워 해, 시장에 맡겨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묻지 않았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마이클 샌델, 이 철학계의 대스타가 다시 정착한 곳은 `공동체적 생활`이다.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의 정의관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시장만능주의에 빠진 가치추구 방식은 곤란하단 말이다. 그가 볼 때 시장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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