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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재범기자] 참 오랜만에 보는 데도 마치 엊그제 본 듯 친근한 얼굴이 있다. 그룹 ‘다섯손가락’이 그런 느낌의 팀이다. 85년 데뷔 앨범이 나왔으니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22년 전의 그룹. 그나마 86년 이후에는 멤버 중 일부가 팀을 떠나 개인 음악 활동에 나섰으니, 창단 멤버가 온전하게 활동한 기간은 불과 2년도 채 되질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의 음악은 지금도 기억 속에 흐릿하거나 낯설지가 않다. 오히려 ‘새벽기차’나 ‘풍선’ 같은 노래는 이제 직장 회식 때 20대 신입사원과 40대 부장이 함께 어깨동무 하고 부르는 세대를 초월한 애창곡이 되었다.
◇ 무대 서면 아직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젊은이
노래만큼이나 다섯손가락의 멤버들 역시 여전했다. 이제 얼굴에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공연을 앞둔 설레임과 의욕은 혈기왕성한 20대 초반과 다름없었다.
봄 햇살이 화창하던 날, 서울 여의도공원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원년 멤버 이두헌(기타, 보컬), 임형순(보컬), 최태원(키보드) 등은 만나자 마자 가벼운 실랑이(?)부터 벌였다.
“이번 공연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겠다고 해서 결국 그 곡 하나 때문에 노래에 맞는 기타를 따로 구했다니까...”(이두헌)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니까, 망신당하면 안되잖아.”(임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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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손가락은 지난 해 12월 같은 이름으로 열렸던 콘서트에 참가했고 이어 연말에 열린 KBS 가요대상에서는 자신들의 히트곡 ‘풍선’을 리메이크한 동방신기와 함께 무대에 섰다. 이번 콘서트가 다시 모여 무대에 서는 세 번째 자리이다.
그러자 이 말을 옆에서 듣던 임형순은 “예전 다섯손가락은 완성된 그룹이 아니었다. 대학생 때 결성한 팀이라 활동하면서도 배우고 변화하던 성장기의 그룹이었는데 이제 다시 모여 해보니 다들 뭘 알고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 짧은 그룹활동이 오히려 그룹 이미지 맑게 남겨
다섯손가락의 멤버들은 팀을 떠난 이후 현재까지 음악활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두헌은 솔로 앨범 활동과 함께 뮤지컬 제작 등으로 분주하다. 그가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서 경영하는 와인 바는 라이브 음악의 명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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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모두들 20년 넘게 음악에만 종사할 정도로 열정이 여전한데 왜 그때 그룹 활동은 2년 남짓 짧게 하고 헤어졌을까.
이두헌은 이에 대해 “대학생으로 구성된 그룹인 한계가 컸다. 멤버 모두가 프로 음악인을 꿈꾸진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신의 길을 가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결국 다 음악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임형순은 “짧은 그룹 활동이 오히려 다섯손가락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음악 여건상 밴드 활동을 계속했다면 아마 사람들은 우리가 나이트 클럽이나 한강변 라이브 카페 무대에 선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차라리 짧게 활동하고 공백이 있었던 것이 팬의 머리 속에 맑고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 올 해 안에 디지털 싱글로 신곡 발표하고 싶어
모처럼 함께 공연 준비를 하면서 손발을 맞춘 다섯손가락은 앞으로 콘서트를 자주 가질 계획이다. 당장 단독 콘서트는 어려워도 음악적 색깔이나 팬들이 비슷한 다른 가수나 팀과 함께 활발한 공연활동을 하겠다는 포부이다.
이두헌은 “지금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해 인기를 얻는 싶은 욕심은 없다. 다만 아직 우리 노래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 활동을 할 생각이다”며 “그렇다고 음악적 완성도 없이 과거의 추억에만 안주하고 싶진 않다”고 밝혔다.
신곡 발표에 대한 열정도 있다. 이두헌은 “앨범은 당장 어려워 디지털 싱글 형식을 생각하고 있다. 어찌보면 나를 비롯해 임형순씨나 최태완씨 모두 음악 현장에 있기 때문에 신곡 작업을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임형순 역시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부활이 여전한 모습을 보여 은근히 히트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그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솔직히 지금 기분에는 다시 음반을 내면 요즘 젊은 친구들 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진 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