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미신고 아동이 불러온 ‘베이비 박스’의 역설(力說)

  • 등록 2023-07-06 오후 1:06:54

    수정 2023-07-06 오후 1:06:54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자신의 친생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와 원치 않는 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난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여성의 ‘인권’ 중 어떤 것이 우선일까. 팽팽한 논쟁거리에 법과 제도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눈앞의 생명을 가엾게 여긴 한 종교인이 현실로 뛰어들었다. 지난 2009년 12월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종종 교회 앞에 유기되는 어린 아이들을 살리고자 ‘베이비 박스’를 국내 최초로 시작했다.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베이비 박스를 두고 ‘유기를 조장한다’며 비난했지만, 최근 정부가 출산기록만 있고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기들의 전수조사를 실시하면서 베이비박스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출생미신고 아동 전수조사는 수원에서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으로 시작됐는데 사라진 아기들의 상당수가 베이비 박스로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지난 8년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2000여명의 아기들 중 900여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병원 안’에서 출생한 아기들의 통계이며, 병원 밖에서 홀로 아기를 낳은 사례는 포함되지 않았다. 병원 밖 출생까지 포함해 베이비박스가 지난 8년(2015~2022년)간 살린 아기는 1418명이다.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로 들어오지 않은 남은 아기들은 사망했거나 불법 입양거래로 팔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전수조사 이후 경찰이 영아 살해 수사를 시작한 사례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출생미신고 아동 중 6일 파악된 사망 아동 수만 24명이다. 이 중 11명은 범죄 혐의를 발견해 경찰이 수사 중이고, 나머지 아기들은 ‘혐의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반면 베이비 박스로 들어온 아기들은 단 한명도 죽지 않았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1418명의 아기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1045명은 시설에 들어가거나 입양을 갔다”며 “이 중 조사 대상인 아기들은 900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400여명은 이미 소재 파악이 완료됐고 나머지 아기들도 빠르게 소재 확인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베이비박스의 긴급 지원으로 안정을 찾고 ‘출생신고’를 결심하는 여성들도 30%가 넘어간다는 게 주사랑공동체의 설명이다. 양 사무국장은 “베이비박스 아기 중 373명은 출생신고가 됐고, 이 중 친모 품으로 돌아간 아기는 225명”이라며 “베이비박스를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이 긴급 지원을 받으며 오히려 아기를 키우고자 결심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종락 목사는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단언컨대 유기를 위해 출산하는 엄마는 없다. 지금도 위태롭게 아기를 끌어안고 울고 있을 미혼모와 여성을 국가가 지켜달라”며 “미혼모가 안전하게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보호출산법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보호출산법은 임산부가 익명으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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