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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단발령’. 강원도 금강군과 창도군 경계에 있는 고개. 신라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을 달래며 이 고개에 이르러 머리를 잘랐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이 그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대면하는 순간 그림이 나왔다. 진경산수화 ‘단발령도(斷髮嶺圖)’다. 마치 하늘에서 새처럼 내려다본 듯해 불국토를 연상케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겸재가 조선의 화성 혹은 묵성으로 불리는 으뜸은 ‘진경산수’에 있다. 골산이 유독 많은 조선 산천의 바위나 산의 표현에 그는 이전과는 다른 화법을 썼다. 골산은 필선으로, 토산은 번짐의 효과를 이용해 한 화폭에 선명하고 흐릿한 물상을 동시에 처리한 것이다. 이는 중국 화북과 강남의 필법을 섞어 조선식으로 해결한 겸재의 업적이다. 이후 맑은 하늘 아래 수려한 자태로 빛을 내는 조선의 산천을 그려낸 산수화가 독자적인 화풍으로 자리잡게 됐다.
전시는 겸재가 이룬 진경산수가 후기 화단에 미친 영향력에 대한 탐색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 산하에서 발견한 무릉도원을 다루는 데 중국풍이 아닌 한국풍을 비로소 형성하게 됐다는 거다. 가령 겸재의 ‘단발령도’와 비교되는 금강산으로는 호생관 최북(1712~1786)의 ‘헐성루망금강도(歇惺樓望金剛圖)’가 있다. 금강산의 빼어난 주봉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내금강 정양사의 헐성루에서 바라본 경관이다. 흰 바위산과 먹의 흙산을 대비한 것은 겸재의 여파다.
표암 강세황(1712∼1791)의 ‘금강산 비홍교도(金剛山 飛虹橋圖)’도 있다. 금강산 장안사 앞 계곡에 날아갈 듯 놓인 무지개다리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겸재와 같은 듯 다른 건 먼 바위산의 푸른빛이다. 겸재의 진한 먹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표암이 선택한 중국의 남종화풍이다.
서화뿐 아니라 문인들의 서예작품도 걸렸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송이익위논남북학술설(送李翊衛論南北學術說)’을 필두로 석봉 한호, 미수 허목, 추사 김정희 등의 글씨가 화려하다. 9월25일까지 서울 대치동 포스코미술관. 02-3457-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