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정치와 경제의 "이상한 조합"

  • 등록 2003-11-03 오후 4:49:51

    수정 2003-11-03 오후 4:49:51

[edaily 공동락기자]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요즘처럼 정치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있고 재미있는 시절은 없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국제부 공동락 기자가 러시아의 사례를 통해 정치와 경제의 기묘한 조합을 살펴봤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난 10월 러시아 검찰은 최대의 석유 기업인 유코스사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사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전격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호도르코프스키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처분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발동했습니다. 호도르코프스키의 전격적인 체포는 주식시장을 비롯한 러시아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순식간에 주가는 10% 가까이 곤두박질을 쳤고 투자자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물론 일부 독자분들께서는 단일 기업의 최고 경영진 한 사람이 체포된 것이 그렇게 심각한 파급 효과를 미치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유코스가 러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결코 호사가들이 이러쿵 저러쿵하는 단순한 `호들갑`은 아닌 듯 합니다. 유코스는 단순히 한 기업이라는 의미를 넘어 러시아의 대표 브랜드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업입니다. 1990년대 말 절대절명의 디폴트 위기를 극복하고 러시아 경제가 오늘날 이머징마켓의 주목받는 국가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유코스`라는 대표 브랜드가 차분히 바닥을 다지며 러시아에서도 시장 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니까요. 유코스의 높은 지명도는 경영자인 호도르코프스키에 대한 인기로 이어집니다. 공공연히 푸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를 받으면서 그의 영향력은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구속 역시 그의 높은 인지도를 경계한 정부 당국의 선거를 앞둔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입니다. 그런데 최근 호도르코프스키가 공산당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러시아 공산당은 호도르코프스키 구속 직후 열린 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비공개 회의에서 그를 내년 3월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산당이 호도르코프스키를 다음 대선 후보로 지목하려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에 맞설 유일한 대안이 달리 없다는 이유죠. 또 공공연히 야당에 대해 자금을 지원한 `괘씸죄`로 크렘린과 갈등을 보였다는 사실도 그가 야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는 적지 않은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러시아 최대 재벌의 공산당 대통령 후보 출마", 언뜻보면 상상조차 힘든 난해하고 역설적인 조합이 과연 어떻게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느냐 하는 의문 말이죠. 물론 호도르코프스키 본인은 어떠한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럴 기회도 없었구요. 그러나 한 정당이 자신들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중대한 결정을 단순히 지명도 높은 한 인물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라는 추론을 보태면 단순한 해프닝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학창시절 유권자의 행동 이론 가운데 "중위자 투표론(Medium Vote Theorem)"이라는 이론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간락하게 표현하면 한 표라도 더 얻는 자가 이기는 다수결 제도 아래에서는 두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 성향을 일렬로 세울 경우 중간 성향의 중위자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골자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중위자의 선호에 부합하기 위해 각 정당의 공약은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현실 정치에서도 유사한 사례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종 선거에서 자신만의 선호가 반영된 공약보다 훨씬 더 많이 유사한 공약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또 우파와 좌파의 대결 구도가 분명한 유럽 국가에서도 공약을 통한 정당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죠. 쉽게 말하면 `그 놈이 그놈`인 경우가 나날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저는 그러나 아무리 중위자 투표론에 근거한다고 해도 `공산당과 재벌`이라는 이상한 조합이 본선 경쟁력이라는 오직 한가지 잣대 만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적지 않은 부조화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정치면 보다는 해외 토픽감에 더 가까운 뉴스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정당의 존립 이유는 정권을 잡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권이 정당을 존재하게 하는 이유라고는 하지만 신념과 가치관을 하루 아침에 안면몰수하듯 다 없애고 단순한 권력을 지향하는 인물들 만 채워간다면 그 모임을 과연 누가 정당이라고 할까요. 아울러 러시아 공산당의 한 관계자는 "호도르코프스키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 면책특권을 부여받아 구속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쯤되면 대통령직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천형(天刑)의 자리`일 수 있다는 제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새삼 뼈져리게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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