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썰렁한 저녁장사…공포 분위기 조성해선 안돼

우려가 현실로…정부청사 주변 썰렁한 식당가
오락가락 권익위 유권해석에 "떨어지는 비는 피하고 보자"
신고자 보호만 강조하니 대상자들은 더 몸사려
  • 등록 2016-09-30 오후 2:33:43

    수정 2016-09-30 오후 2:33:43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명함 좀 가져가세요. 우리는 비싼 데도 아닌데… 예약 좀 해줘요. 오면 잘 해 드릴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당일인 28일, 국밥집에서 저녁 자리 후 계산하고 나가는 길에 식당 사장님은 우리 일행에게 명함을 한 장씩 건네시며 간곡히 부탁했다.

다음날인 29일은 세종문화회관 지하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가를 들어서자 주변 한정식집이나 중식당의 썰렁한 분위기에 놀랐다.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7시 반쯤이기는 했지만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없어 식당가에는 마치 휴점일 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당일인 28일과 이튿날인 29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 식당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기운이 돌았다. 청사 인근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그나마 점심에는 이전의 절반 정도는 사람이 오는데 저녁에는 10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다”며 “3만원 이하는 상관 없다고 하던데 아예 손님들이 예약을 안 한다”고 하소연했다.

외식업종을 비롯해 당분간 내수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예상한 바였지만 실제 효과는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전언이다. 모기업 홍보실 A 과장은 “권익위에서 하는 말이 전화받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서 헷갈린다”며 “27일부턴 아예 통화도 안 돼서 애매한 자리는 다 취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자리라고 해도 공직자 등이 포함돼 있으면 괜한 신고를 당할까 겁나서 일단 취소했단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김영란법 ‘수사 1호’로 지목되고 있는 신연희 강남구청장 건이 불거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더 팽배해지고 있다. 아직 수사도 안 들어간 피신고자는 신상이 털렸지만, 권익위는 직접 언론에 나서 스스로 밝힌 신고자에 대한 보호에만 신경을 쓰겠다고 한다. 주무부처라는 곳에서 “김영란법에는 피신고자 보호에 대한 조항은 없다”고 하니 “걸리면 손해다. 무조건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는 공포감 마저 생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영란법 시행에 찬성했다. 법의 취지가 좋은 만큼 잘 시행돼서 우리 사회에 청렴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했다. 그 과정에서 불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내수 경기 침체와 악의적인 이용에 대한 지적에도 ‘설마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권익위의 소극적인 대응과 안이한 대처에 상인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법 적용 대상자들은 한껏 위축되는 모습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고통은 어쩌면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인지로 모른다. 다만 이 과정이 그저 고통으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잘못된 점은 즉각 수정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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