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자산운용의 5000억원대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건에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옵티머스 운용의 고문으로, 양호 전 나라은행장이 최대주주로 등장, 정·관계 인사를 소개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옵티머스 주주인 이진아 전 청와대 행정관은 자신이 비상임이사로 있었던 한국농어촌공사의 자금을 펀드에 유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옵티머스는 겉으론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애초부터 사기를 칠 작정으로 자금을 끌어모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어느 정권에나 권력형 게이트는 있었고 자기 잇속을 위해 뇌물을 주고 받는 사건도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코스닥 상장회사를 무자본 M&A(인수합병)로 인수해 상장회사의 자금을 빼돌리는 기업사냥꾼도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갖가지 사건들이 사모펀드와 만나면서 종합비리세트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라임·옵티머스의 환매 중단 펀드 규모만 2조원대이고, 이를 포함한 환매 중단 펀드는 51개 운용사, 6조원대에 달한다.
문제는 은행, 증권사를 통해 예금 이자보다 좀 더 나은 이자를 받고자 아무 것도 모르고 이들 펀드에 돈을 집어넣는 평범한 투자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일정액 이상의 투자 능력이 되는 투자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그렇다면 사모펀드는 언제부터 악의 무리의 놀이터가 됐을까.
사모펀드가 사기꾼의 놀이터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2015년 시행된 사모펀드 규제 완화책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이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자산을 운용한 경험이 전무한 사람(금융사 근무 경력 3년 이상)도 자금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운용사 설립에 들어가는 최소자본금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줄었고 2017년말부턴 다시 10억원으로 감소했다. 펀드 개설도 금융감독원 사후 보고 방식으로 변경됐다. 투자자 돈을 모집, 설정한 후 2주 내에만 금감원에 대략 보고하면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뭘 투자했는지는 운용사만 알았다.
투자자는 내가 투자한 돈이 최소한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까. 몰랐다. 운용사의 사모펀드 운용보고서 교부 의무가 사라졌다. 판매사가 달라고 하면 한 달이 지난 운용보고서를 제공하긴 하나 보고서에서조차 구체적인 투자 대상을 알 수 없다. 펀드 하나로 부동산 금융, 메자닌, 사모사채 등 갖가지 다양한 자산을 마구잡이로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라임 플루토 펀드가 85개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삼일회계법인은 라임 환매 중단 사태 이후 펀드가 투자한 자산을 확인하는 데에만 회계사 20~30명이 투입, 석 달 넘게 실사해야 했다.
옵티머스처럼 투자자는 물론 펀드를 판매하는 판매사,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사, 펀드 기준가격을 매겨 수익률을 기록하는 사무관리사까지 모조리 속이는 운용사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수탁사와 사무관리사는 서로의 자산을 대조할 선관 의무가 있다고 하나 현실에선 법적인 해석을 들이대야 할 만큼 공론화돼있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라임·옵티머스 운용이 자금을 돌리다 돌리다 못해 펑크가 나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이 이르러 ‘환매 중단’을 선언한 이후에야 이들의 비리 전말이 드러났다.
사모펀드를 감시할 주체가 아무도 없게 되자 기업사냥꾼들이 펀드의 머리 꼭대기에 앉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업사냥꾼들은 명동 사채시장, 조폭 자금, 저축은행 등을 자금 창구로 활용, 인수하려는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무자본M&A로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 상장사의 자금을 빼돌리고 주가를 조작해 추후 비싼 값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이런 자금 창구에 사모펀드가 이용된 것이다. 사모펀드는 불특정 다수가 투자한 자금으로 사실상 이들에겐 갚을 필요 없는 눈먼 돈에 불과했다.
김봉현 전 회장 역시 라임 펀드 자금과 수원여객, 향군상조회 자금 등을 횡령해 회사를 인수하는 기업사냥꾼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외에 라임 자금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는 리드 김정수 회장(구속), 메트로폴리탄 김 회장(도피), 에스모 이 회장(도피) 등도 기업사냥꾼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들이다.
옵티머스도 다르지 않다. 다만 라임은 본래 투자처인 해외 무역금융 펀드에 투자하면서 손실을 본 것과 기업사냥꾼이 개입하면서 자금이 빼돌려진 것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반면 옵티머스는 펀드 설정 당시부터 사기를 쳤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나라 안 망하면, 원금도 보장된다더니”..땅 치는 투자자들
사모펀드 비리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투자자들이다.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은행, 증권사에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투자금 회수 가능해요, 원금 보장도 가능해요”란 거짓으로 투자자를 유인, 자금을 유치했다. 사실 판매사도 이들 펀드가 정확히 어느 곳에 어떻게 투자하는지 잘 모르고 판매했다는 게 정설이다.
사모펀드 규제완화에 최소 투자액이 5억원에서 1억원까지 낮아지면서 서민들이 전 재산을 넣은 경우도 흔했다. 정기적금 만기가 끝날 때쯤 은행 직원의 전화를 받고 펀드에 투자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중에는 유명 연예인,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자기 투자 책임 원칙에 따라 투자에 대한 손실을 투자자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판매사가 운용사와 짜고 부실을 숨기고 펀드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완전 판매 및 사기에 더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다. 신한금융투자는 라임 펀드가 투자한 해외 무역금융 펀드가 환매 중단 등 부실이 나타난 점을 인지했으면서도 이를 속이고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금감원은 무역금융 펀드 투자자에게 전액을 보상하라고 권고했다. 삼일회계법인이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를 실시한 결과 5000억원 중 4000억원은 회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행방을 알 수 없는 자금들도 많았다. 옵티머스의 펀드 자금 역시 금감원의 분쟁 조정을 통해 보상액 등이 결정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사건의 본질을 막기 위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판매사, 수탁사 등이 운용사를 자율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하고 8월부터 사모펀드를 전수조사하고 있으나 여전히 운용 경험이 없는 사람이 펀드 자금을 운용할 수 있고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도 자본금 10억원만 있으면 된다. 금감원은 라임 판매 증권사 임직원 등에 대해 직무정지, 문책경고 등의 제재를 확정했으나 이들의 부정행위를 관리 감독할 금감원은 뭘 하고 있었냐 등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권에선 사모펀드 투자자를 제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모펀드 투자자를 기관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놨다. 국회에선 2018년 10월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논의됐으나 20대 국회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1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