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3억원! 23억원! 23억원!” 경매사의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시작가 12억원에서 출발한 일본작가 쿠사마 야요이(92)의 2010년 작 ‘인피니티 네츠’(GKSG)가 23억원을 부른 현장 응찰자에게 팔려나가는 순간이다.
비단 쿠사마의 작품만이 아니다. 예고한 149점 중 출품 취소된 3점을 제외한 146점 대부분이 경매사의 경매봉 아래 ‘낙찰’을 신고했다. 그렇게 얻어낸 성적이 ‘낙찰률 95%’. 이는 국내 경매사에서 기록한 낙찰률 중 역대 최고다. 서울옥션이 지난달 22일 ‘제159회 미술품 경매’에서 거뒀던 낙찰률 90%도 자체 경신하게 됐다. 낙찰총액은 약 104억원. 추정했던 100억원을 가뿐히 넘겼다.
23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한 ‘스프링세일’은 올해 들어 미술시장에 불기 시작한 ‘바람’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이쯤 되면 훈기 이상의 열기라 해야 할 거다. 응찰이 꼬리를 물면서 3시간을 훌쩍 넘긴 지루함 따윈 묻어버린 듯했다.
|
김창열 ‘초강세’…8점 또 다 팔아
‘물방울’ 중 이번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작품은 50호(70×124㎝) ‘물방울’(1970s)로, 3억 3000만원에 낙찰됐다. 이어 30호(92.7×73.5㎝) ‘물방울’(1979)도 3억원을 찍으며 ‘대박 행진’에 가세했다. 지난 1월부터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진행한 3차례의 메이저경매에 나왔던 21점에 이어 이번 경매의 8점까지, ‘물방울’ 그림은 나오는 족족 팔려나가는 중이다.
|
이우환·박서보가 이끄는 단색화 흐름도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이우환의 ‘조응’(1995·80호)과 ‘조응’(1997·150호)이 각각 4억원과 3억 6000만원에, 박서보의 ‘묘법 No.030707’(2003·10호)이 1억 500만원에 낙찰됐다. 특히 ‘묘법’은 2000년대 근작 10호 중 1억원을 돌파한 첫 작품이란 또 다른 기록도 세우게 됐다. 김환기의 반구상화도 열기에 올라탔다. 특유의 푸른색 ‘무제’(1960s·30호)가 9억 8000만원에, 드문 붉은색을 바탕으로 한 ‘무제’(1960s·50호)는 5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
서울·케이옥션 낙찰총액 연속 3회 100억원대
홍콩경매를 열지 못한 섭섭함을 달랬다는 말이 되레 섭섭할 정도다. 정작 서울옥션 매출의 큰 줄기를 차지해온 홍콩경매에서도 이런 성적표는 받아보질 못했다. 이로써 지난달 22일에 거둔 ‘제159회 미술품 경매’의 낙찰총액 110억원을 두고 ‘어쩌다 한 번’일 수도 있단 우려까지 잠식시키게 됐다.
코로나19가 무색하게 미술시장을 후끈 달구는 호황의 신호는 국내 경매사 양대산맥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번갈아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케이옥션 ‘3월 경매’는 낙찰총액 135억 8030만원(낙찰률 74%)을 기록하며 모처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3회 연속 ‘100억원대 판매’란 흔치 않은 기록을 만든 셈이다. 지난해 내내 두 경매사의 낙찰총액이 50억∼60억원대를 맴돌며 바닥을 쳤던 때를 떠올리면 대단히 드라마틱한 ‘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