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대신 미술품 낸다? 조세회피 ‘꼼수’ 막을 수 있나

[2021세법개정] 미술품 물납제 공론화
최종안 빠져…의원 입법으로 국회 논의될 듯
현금화·가치 평가 어려워…세수 감소 우려도
  • 등록 2021-07-26 오후 3:30:00

    수정 2021-07-26 오후 9:10:38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전에 모았던 문화재를 공개한 ‘이건희 컬렉션’이 성황이다. 이 회장이 떠나면서 기증한 작품은 2만여건에 달한다. 이들 작품을 만약 기부하지 않고 상속세로 납부했다면 어땠을까.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상속세 대신 미술품을 낼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가 화두에 올랐다. 당초 올해 세법 개정안에 포함하려다가 보류됐지만 국회에서 공론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가치가 높은 예술품 납부를 유도한다는 긍정적 측면과 부자들에 대한 ‘꼼수 납세’라는 우려가 맞서고 있어 논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 개막 첫날인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사전예약자들이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술품 물납 허용 법안, 국회 계류 중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날 발표한 ‘2021년 세법 개정안’에 당초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물납을 허용할 계획이었다.

미술품 물납제는 그동안 미술업계에서 꾸준히 주장한 숙원 사업이다. 당초 기재부는 미술품 물납에 반대 입장이었지만 역사·예술 가치가 높은 문화재인 미술품을 국가가 관리·보존하고 일반 국민들이 볼 기회를 확대한다는 명목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특히 최근 이건희 컬렉션에서 ‘인왕제색도’, ‘추성부도’ 등 문화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공개되면서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고광효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지난 20일 사전 브리핑을 통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과 문화재 보존·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관계부처 간 지속적인 협의를 해왔다”며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통해 민간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해당 제도는 당정 협의를 거치면서 세법 개정안 최종안에는 빠졌다. 정부 입법보다는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하는 방안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3일 브리핑에서 “당정협의 과정에서 물납 허용 취지는 공감하지만 보다 심도 있는 평가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는 포함하지 않는 대신 국회에 세법개정안이 제출되면 함께 논의하기로 했고 필요하면 의원 입법으로 발의돼 논의되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속세 납부시 물납이 가능한 재산에 부동산·유가증권 외 추가로 예술적이고 역사적 가치가 큰 미술품을 포함토록 했다.

같은당의 전용기 의원도 올해 4월 상속·증여세 납부시 문화유산·미술품 물납을 허용하는 내용의 같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에서 미술품 물납제가 공론화되고 새로운 의원 입법안이 나올 경우 해당 개정안과 함께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 사회적 합의 거쳐 시행해야”

미술품 물납제가 당장 시행한다 해도 이 회장이 내놓은 문화재와는 상관없다. 관련법이 통과된 이후 상속 개시분부터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술업계에서는 하루 빨리 미술품 물납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미술협회·한국박물관협회 3개 단체는 올해 3월 정부에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촉구하는 대국민 건의문을 내기도 했다.

수집가들이 오랫동안 노력해서 모은 미술품 중 상당수가 재산 상속 과정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처분되면서 우리 문화재 유출이나 손실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국가지정문화재 4900여건 중 50% 이상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전국 사립박물관·미술관이 소장한 자료 440만건 중 상당수가 높은 가치를 미술품이거나 문화재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적 소유의 문화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재산 상속 시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정해 국가 소유로 귀속해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외서도 프랑스는 대물 변제를 통해 미술품 물납제도를 처음 적용했고 영국도 미술품과 중요 문화제를 상속세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문화청 등록 미술품에 한해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미술업계의 건의문 발표 후 성명을 내고 조세 회피 수단이나 재벌 상속·세습을 위한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술품의 경우 가치 평가가 어려운 부분이 한계로 꼽힌다. 물납심의위원회를 통해 감정평가액 적절성을 평가한다고 해도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환금성이 높지 않고 기준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재벌이 미술품의 감정가액을 부풀려 실제 내야할 상속세를 줄이는 ‘꼼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가가 미술품을 국립박물관 등에 보존할 경우 세수 감소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상속세에서 감정평가액만큼 공제하게 되면 장부상 세수는 차이가 없지만 경매 등을 통해 현금화하지 않을 경우 실제 들어오는 현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술품만 상속세 물납 대상으로 선정한다면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역사적·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인 만큼 다른 자산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도 당장 세법 개정안에 미술품 물납을 제외한 만큼 각계 의견을 수렴해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 재정 여건을 보면 증세를 고려해야 할 상황인데 세수가 줄어들 수 있는 미술품 물납을 당장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중장기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를 보완해가면서 도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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