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손해 보고 빚낼 수밖에"…폐업위기 버티는 말 농가

[위기의 말산업]②경주마 경매 낙찰률 4년새 40→26%
최저가 2천만원도 유찰…“개별거래 500만원 떨이 감수”
정부 지원은 융자 뿐…경마 정상화 기다리며 수억 빚
  • 등록 2021-08-18 오후 5:02:06

    수정 2021-08-18 오후 9:36:32

[제주=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경주마 경매가 열리던 제주시 조천읍의 한 경매장. 대기 중인 경주마들이 입구 앞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경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 말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마주(馬主)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낙찰되면 경마에 출전할 채비를 갖추게 되지만 대부분은 유찰 딱지를 받아들고 쓸쓸히 농장으로 돌아간다.

경주마를 키운 농장주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경마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주마는 어디에서 쓸 곳이 없는 계륵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6일 제주에서 열린 경주마 경매장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경주마들이 준비운동하고 있다. (사진=이명철 기자)


코로나19 사태에서 경주마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적당한 가격을 받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떨이 처분하거나 심할 경우 도태시키기도 한다. 경마 정상화만 기다리는 생산 농가들은 수억원대 빚을 내가면서 폐업 위기에서 버티고 있다.

최고 2억대 팔리던 경주마, 올 들어 1억도 못 넘어

지난달 5~6일 제주에서는 국내산마(2세) 경매가 열렸다. 경주마 경매는 보통 한 해에 다섯 차례(2세마 3회, 1세마 2회) 정도 열린다. 지난 달은 올해 2세마 마지막 경매였다.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긴 경주마가 차례대로 단상에 오르면 최소 2000만원의 입찰가에서 경매가 시작한다. 마주나 조교사 등이 응찰해 각 경주마별로 정한 예상낙찰가격에 도달할 경우 낙찰된다.

예전 같았으면 마주·조교사와 농장주들로 가득해 축제 분위기였던 경매장은 3분의 2 이상이 빈 자리일 정도로 한산했다. 이날 경매에 참여한 한 조교사는 “작년에는 경마가 사실상 중단돼 경주마를 들일 필요가 없다 보니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하반기 코로나19가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찾았지만 딱히 입찰을 노리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주마 경매시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경주마생산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산마 경매 낙찰총액은 2017년 117억4800만원에서 지난해 64억16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낙찰률은 같은 기간 40.5%에서 22.2%까지 낮아졌다. 올해 26.0%로 다소 높아졌지만 여전히 경매에 참여한 경주마 10마리 중 7마리 이상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경매 최저 입찰가격은 2000만원부터지만 이는 3000만~4000만원 선인 경주마 생산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농가들은 만약 경주마 5마리를 경매에 상장했다면 품종이 우수한 한 두 마리를 높은 가격에 낙찰시켜 수입을 보전한다. 하지만 최근 경마 사업 부진으로 수요가 줄다 보니 최저가격에 팔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경매 최고 낙찰가격은 2017년 2억5200만원에 달했지만 올해 1억500만원에 불과하다. 이날 실시한 경매에서도 최고 낙찰가는 9100만원에 그쳤다.

올해 2세마 경매가 끝났기 때문에 내년이면 3세가 되는 유찰 경주마들은 사실상 수요가 끊긴다. 경주마 품종으로 길러져 승마용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

이날 경매에 동행한 오권실 경주마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은 “경주마는 훈련을 위해 위탁비용으로 매달 150만원 이상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떻게든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2000만원에도 유찰된 말은 개별 판매에서 완전 헐값에 넘겨지게 되는데 어쩔 수가 없다”고 전했다.

“경마로 말산업 유지…농민 위기 외면 말아야”

기약 없는 경마 정상화는 농가들에게 큰 부담이다. 양파 같은 농산물이라면 판매가 되지 않을 경우 저장창고에 쌓아놓고 기다릴 수 있지만 경주마는 판매 시기가 지나면 끝이다. 경주마 한 마리당 들어가는 인건비도 만만찮다.

7월 6일 실시한 경주마 경매에서 참가한 말이 9100만원 최고 낙찰가를 받고 있는 모습(왼쪽), 또 다른 말은 최저가 2000만원에도 유찰됐다. (사진=이명철 기자)


한 해 8마리 정도의 경주마를 생산하고 있는 그랜드팜의 배병재 대표는 “예전 같았으면 경매 말고도 마주나 조교사들이 농장을 돌면서 괜찮은 말들을 미리 살펴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며 “올해 경마에서도 3마리는 팔았지만 현재 5마리가 남았다”고 말했다.

경매에서 남은 말들은 고스란히 경영비 부담이다. 배 대표는 제주에서 농지를 빌려 농장을 운영 중인데 임차료와 관리비 등 한해에만 2억원 가량이 경영비로 빠져나간다. 싼값에라도 경주마를 넘겨야지만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처지다. 배 대표는 “마지막 경매가 끝나고 수요자 우위 시장이 되면 단돈 500만원이라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경주마 판로가 막힌 농가들은 빚을 내 농가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 방안이라고는 융자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창만 경주마생산자협회장은 “노동집약 형태인 말 농장은 별다른 시설이 없어 폐업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작년에만 농가를 운영 중인 아들과 함께 3억원 가량의 빚을 져 운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마가 사행 산업이라고 하지만 마사회의 이익은 축산발전기금이나 승마 등 말 관련 산업의 자양분이 된다. 경마가 회생 불가능 상태에 빠질 경우 관련 산업의 연쇄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회장은 “승마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유도 축산발전기금을 통한 지원이 있기 때문”이라며 “말 생산업은 경마가 없으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농민의 어려움을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병재 그랜드팜 대표. (사진=이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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