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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공연계에 따르면 ‘엘리자벳’에서 주인공 엘리자벳 역을 맡은 배우 옥주현이 지난 20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배우 김호영과 네티즌 2명 등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김호영 소속사 측은 옥주현의 고소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과 함께 명예훼손으로 맞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엔 ‘엘리자벳’ 캐스팅이 있다. 이번 공연은 국내 초연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일부 팬들 사이에선 옥주현과 함께 작품의 흥행 주역이었던 배우 김소현, 신영숙 등의 출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가 지난 13일 공개한 캐스팅에선 김소현, 신영숙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옥주현과 이지혜가 더블 캐스팅되면서 ‘인맥 캐스팅’이 아니냐는 의혹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지혜가 옥주현과 절친한 후배이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14일 김호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과 함께 옥장판 사진과 공연장 이모티콘을 올리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옥주현을 겨냥한 글이라는 논란이 증폭되자 옥주현은 “사실 관계 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 혼나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결국 명예훼손으로 김호영을 고소하면서 이번 논란은 법정공방으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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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극장 뮤지컬, 특히 라이선스 뮤지컬은 원작자 또는 원작 제작사 관계자가 참여하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엘리자벳’의 경우 EMK가 지난해 12월 8일 오디션 공지를 올렸고 1·2차 온라인 서류·영상 심사와 3·4차 대면 오디션을 거쳐 주요 배역 및 앙상블을 선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맥 캐스팅’이 적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는 제작사가 아닌 이상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 뮤지컬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한 배우가 다른 배우와 같이 ‘1+1’으로 캐스팅을 하면 좋겠다고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실력 있는 중고 신인에게 오디션을 보는 기회를 주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로 캐스팅이 인맥으로 이뤄진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상업적인 장르이고 제작사, 감독 등이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만큼 캐스팅과 관련해서도 제작사가 결정권을 가져야지 외부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팽팽히 맞선다.
실제로 인맥 캐스팅 같은 논란이 있다면 배우 한 명이 대응할 것이 아니라 뮤지컬계 내부에서 공통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브로드웨이 같은 경우 이런 문제에 있어 배우조합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우리도 배우들이 ‘뮤지컬배우협회’ 등을 결성해 의견을 내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뮤지컬은 무대 뒤 보이지 않는 100여 명의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종합예술인데 우리는 뮤지컬 시장이 배우에만 너무 집중돼 있다”며 “배우도 작품의 하나의 요소로 받아들여질 때 시장도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뮤지컬 1세대 배우인 남경주, 최정원, 배우·연출·음악감독 박칼린 등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뮤지컬 1세대 배우로서 비탄의 마음을 금치 못한다”며 “뮤지컬 제작 과정에서 불공정함과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직시하고 올바로 바뀔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할 것이며, 뮤지컬의 정도(正道)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들이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