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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에서 피난민들을 돌보고 있는 테레시냐 몬테이로 수녀는 칫솔과 치약에 감격했던 한 여성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 그녀는 4개월간 이빨을 닦지 않고 이곳으로 ‘탈출’했다.
‘세계 제1위의 원유보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이제 ‘사람수출국’이 됐다. 눈앞에서 치솟는 물가에 먹는 것조차 구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결국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인접국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에콰도르 등으로 건너가고 있다.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전체 인구 3200만명)를 탈출한 인구는 약 230만명으로 추정된다. 너무 많은 난민이 유입되자 에콰도르와 브라질 등은 유효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입국을 허용하는 등 관문을 높였고 에콰도르는 21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 정부에 난민 문제에 대한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가 이토록 극심한 경제난에 빠진 것은 전임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빈민의 영웅’, ‘독재자’, ‘표퓰리스트’ 등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는 차베스는 2000년대 초 국제 유가 급등으로 확보된 엄청난 재정을 바탕으로 빈민·원주민·장애인 등 소외계층에게 전면적 무상복지를 시행했고 외국자본이 소유한 석유회사를 국유화해 채굴·정유 산업의 50%를 국영화했다. 재임 기간 정부 세입의 60% 이상을 사회복지에 투입, 2003년 62.1%였던 빈곤율은 2011년 31.9%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는 곧 산업기반의 와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국유화를 피해 민간 자본들은 해외로 빠져나갔고 부정부패에 연루된 자금도 해외에 머물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회당에 따르면 역외 베네수엘라 민간자금은 4500억달러에 육박한다.
7월 기준 베네수엘라에서 닭 한 마리의 가격은 1억 4600만 볼리바르(Bolivar)다. 이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2000여개 지폐다발이 필요하다. 무게로 환산하면 14.6kg이다. 타임즈는 “베네수엘라의 상점에는 가격표가 없다”고 보도했다. 몇몇 회사는 돈 대신 계란으로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주요 경제지표를 2015년 이후 발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2016년 522.3%, 2017년 584.4%, 2018년에는 1200%로 추정된다.
무리한 국유화가 낳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PDVSA는 20일 미국 석유기업 코노코필립스에 20억달러를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2006년 베네수엘라 정부의 석유산업 국유화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국제상업회의소(ICC)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20억달러는 베네수엘라가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자산국유화로 걸려있는 소송은 이뿐만이 아니다.
초(超)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가 시행한 화폐 개혁은 그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기존 통화에서 10만대 1로 액면 절하한 블리바르 소베라노(Bolivar Soberano)라는 새로운 화폐를 도입했다. 그러나 새로운 화폐를 찍어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이 부족한 베네수엘라 정부는 새로운 화폐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고 국민은 은행과 ATM 앞에서 새 통화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고 BBC는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까지 일어났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날 베네수엘라 북부 수크레주 이라파시에서 남서쪽으로 22km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진 발생 이후 600여km 떨어진 수도 카라카스 시내 건물들까지 크게 흔들렸고 노후한 건물에서 벽돌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진 발생 직후 규모를 6.3으로 발표하는 등 사태를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