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시선]‘해병대 극기훈련’보다 ‘그릿’으로 접근하면 안될까

  • 등록 2023-10-14 오전 7:46:49

    수정 2023-10-14 오전 7:48:06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해병대 극기훈련 계획을 밝혀 논란을 일으킨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연합뉴스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이겨내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등극한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 사진=연합뉴스
[안준철 스포츠 칼럼리스트] 제19회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가 막을 내렸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 39개 종목, 1140명 선수가 참가해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 등 총 190개 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 개최국 중국(201개)과 일본(52개)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했다.

목표로 했던 종합 3위는 지켰다. 다만 금메달 50개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8일 중국 항저우의 한 호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의 대회 결산 기자회견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특히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내년 파리올림픽을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약속하면서 “내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촌하기 전에 해병대 극기훈련을 하게 할 것이다. 저도 같이 하고 입촌할 계획이다”라는 발언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단, ‘해병대 극기훈련이 철저한 준비와 관련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세계 최강 양궁 대표팀이 담력을 키우기 위해 과거 해병대 UDT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1998년, 20세기 일이다. 2003년에도 야간행군과 다이빙 훈련,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번지점프도 했다. 20년 전 얘기다. 물론, 이후에도 휴전선 인근 전방 부대에서 철책 근무를 하기도 했다. 양궁은 종목 특성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신력 강화 차원에서 행해진 훈련이다.

그러나 ‘극기훈련’이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킨 원동력이라고 하기엔 타당성이 부족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각 종목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과학’을 외치는 시대에 ‘해병대 극기훈련’은 생뚱맞다. 차라리 ‘그릿(Grit)’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목표를 위한 열정과 노력을 뜻하는 ‘그릿’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심리학과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 교수가 제안한 개념이다. 더크워스 교수는 오랜 기간 예술, 체육,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을 밝히고자 했는데, 그 공통점을 ‘그릿’으로 설명했다.

국내 스포츠계에서도 ‘그릿’은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프로축구 광주FC 이정효 감독은 지난해 4월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한 뒤 선수들에게 더크워스 교수의 책 ‘그릿’을 선물해 화제가 됐다. 광주는 지난 시즌 K리그2를 우승하고, K리그1로 승격했다.

‘그릿’은 ‘노력의 꾸준함(Perseverance of Effort)’과 ‘흥미의 지속성(Consistency of Interest)’이 핵심요소이다. 인내에 해당하는 ‘노력의 꾸준함’이란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실패나 좌절,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끈기를 뜻한다. 열정에 해당하는 ‘흥미의 지속성’이란 목표와 흥미를 쉽게 또는 자주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운동선수에게는 딱 맞아떨어진다. 반복되는 경쟁과 도전, 평가 속에서 승리(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기, 끈기, 열정과 같은 비인지적 요소가 중요하다. 물론, 선천적인 재능, 잠재력 없이 끈기와 열정만으로 성취를 이룬다는 것은 아니다. 잠재력에 노력이 투입될 때 실제 능력으로 발휘되고, 성취한다는 것이다. ‘재능 X 노력2=성취’라는 공식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그릿’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첫째,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높은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 둘째, 질적으로 다른 연습, ‘의식적인 연습(deliberative practice)’을 해야 한다. 셋째,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아시안게임 여자 배드민턴 2관왕인 안세영(21·삼성생명)이 좋은 예다. 안세영은 여자 단식 결승에서 꺾은 중국 천위페이에게 5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완패했다. 2년 전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패했다.

안세영은 천위페위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를 시작으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안세영의 훈련 과정, 노력, 그리고 여자 단식 결승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끈기, 열정은 ‘그릿’으로 설명하기 충분하다.

‘해병대 정신’, ‘극기훈련’이라는 ‘꼰대’같은 수사보다는 공식화된 ‘그릿’이라는 개념이 MZ세대인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쌍팔년도’라 불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 종합 4위라는 쾌거에도 ‘스포츠 과학’, ‘체계적인 훈련의 결실’이라는 자가진단이 있었다. 이는 2024 파리올림픽에도 당연히 유효하다. 해병대 훈련을 생각할 시간에 ‘그릿’을 충만하게 해줄 세부 전략을 세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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