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내홍, 무엇이 사태 키웠나…"불통·관료주의" [스타in 포커스]

허문영 집행위원장 이어 이용관 이사장도 사의 표명
5개월 남은 BIFF 불똥…"개최 자체가 불투명" 우려 목소리
두 수장의 사임에 "무책임" 비난…"국제적 망신" 지적
내부 구성원들조차 '불통'…폐쇄적인 관료주의가 일 키워
"허문영 복귀해야"vs"새 인물로 원점에서 재시작" 의견 갈려
  • 등록 2023-05-16 오전 6:00:00

    수정 2023-05-16 오전 6:00:00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개최 5개월을 앞두고 집행위원장과 이사장의 잇단 사의 표명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한국 영화가 안팎으로 힘든 시기, 국내를 대표하는 영화제에서 발생한 내부 잡음에 영화인들의 우려와 실망이 크다.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구성원 간 불통과 조직 내 뿌리 깊은 기계적 관료주의, 정치조직화 등 오랜 기간 쌓여왔던 문제점들이 ‘운영위원장 위촉’ 과정에서의 갈등을 계기로 곪아터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집행위원장→이사장까지 사의…영화제 내홍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15일 오후 최근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의 표명과 관련한 설명회 성격으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달 31일쯤 허 집행위원장을 만날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그의 복귀를 설득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영화제를 떠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 11일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의 표명 사실이 알려진 지 불과 나흘 만에 이사장까지 직책을 내놓은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따르면, 허 집행위원장은 지난 9일 임시총회에서 돌연 사의를 밝혔다. 사의를 표명한 이유도 따로 밝히지 않았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소식이 알려질 당시 이데일리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죄송하다”고 심경을 전한 이후 현재까지 전화기를 꺼둔 채 매체들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다만 영화계 내부에선 허 집행위원장이 지난 9일 임시총회 당시 위촉된 조종국 운영위원장의 선임 및 직제 도입에 대한 반발의 성격으로 ‘사의’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운영위원장을 두는 건 사실상의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내부 구성원 간 설득 및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반면 영화제 측은 해당 사안이 임시총회 안건으로 허 집행위원장도 참석한 채로 오랜 기간 논의돼온 사항이라고 이를 일축했다. 또 운영위원장 위촉은 ‘집행위원장을 2인 이내 둘 수 있다’는 정관 내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제를 이끄는 두 수장의 사의로 오는 10월 4일 개최 예정인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엔 먹구름이 꼈다. 개막작과 폐막작 선정부터, 초청 영화 선정 및 조율, 감독 및 배우들의 초청 등 중요한 실무들을 한창 처리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장 16일 개막을 앞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집행위원장이 불참함으로써 부재를 국제 사회에 공인하게 된 상황.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영화제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는 평가다. ‘다이빙벨’ 사태는 부산영화제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작으로 선정해 부산시로부터 집행위원장 사퇴 압력을 받았던 사건을 일컫는다. 한국 영화계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뒤흔든 가장 큰 위기로 꼽힌다.

한국수입배급사협회 대표를 맡고있는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현 상황에 대해 “한국 영화가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이런 문제가 터져 통탄스럽다. 칸 국제영화제도 집행위원장 없이 가게 됐는데 이런 국제적 망신이 어디있나 싶다”고 비판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허문영 위원장의 복귀를 촉구하기도 했다. 영화제작가협회는 “허 집행위원장은 영화계 안팎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대다수 영화인들은 그가 앞으로도 한동안 부산영화제를 이끌어 나가야 할 적임자라 생각한다”며 “잘못된 결정을 철회하고 허 위원장의 복귀를 위한 노력을 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뇌부 무책임·구성원 불통…쓴소리 이어져

내부 갈등을 현명히 봉합하지 못하고 직책을 내던진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상우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큰 국제영화제를 놓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있을 순 있지만 자리를 내던지는 것은 무책임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A배급사 대표는 “(두 사람이)이미 직책을 내놓은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집행위원장이든 이사장이든 둘 중 한 명이 다시 돌아온다 한들 임기 전에 책임을 저버린 사람을 어떤 영화인이 신뢰하겠나”라고 일침했다. 이어 “올해 안에 제대로 된 영화제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해를 차라리 쉬고 이 기회에 영화제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그간의 문제점들을 성토한 뒤 새로운 인물을 선출하는 등 재정비를 거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꼬집었다.

무엇이 이 사태까지 초래한 걸까. 업계 관계자들은 ‘불통’과 ‘매너리즘에 빠진 관료주의’가 영화제를 망가뜨렸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부산영화제 내부의 한 관계자는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의 갈등을 떠나 이번 사태를 가져온 가장 큰 문제점은 ‘불통’”이라며 “영화계 전반을 향한 소통은커녕 이번 과정에선 영화제 집행위원 간의 제대로 된 소통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제 집행위원은 당시 위원들이 받은 임시총회 안내 메일엔 ‘공동집행위원장 선출’이란 안건 한 줄만 달랑 적혀있을 뿐 운영위원장 직책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 설명이나 안내가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몇몇 집행위원들의 요청으로 총회 직전이 되어서야 안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B배급사 대표는 “어설픈 정관 해석, 주먹구구식 임시총회로 ‘운영위원장’이란 듣도보도 못한 직책을 만들어 앉혀놓는 것은 이사장의 입맛에 맞게 조직을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으로밖에 안 보인다”며 “‘다이빙벨’ 사태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과 고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이 고군분투했을 당시부터 함께한 영화제 스태프들은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뭘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영화제가 ‘영화제’의 본분을 잊고 정치 조직, 공무원 조직처럼 폐쇄적인 관료주의에 갇혀 운영이 돼왔던 것은 아닌지 내부 구성원들 모두가 반성하고, 사태 회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프로듀서는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백기를 든 상태로 사무국장 혼자 남아서는 영화제를 제대로 개최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노출한 셈이다. 부끄럽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 없이 아예 새로운 인물을 뽑아 영화제를 꾸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복귀해 체제를 다시 정립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속내를 전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표인 양윤호 감독은 “낳고 기른 부모,삼촌 마음은 너무 고맙고 애틋하지만 이제 청년이 된 부산영화제가 세상에 잘 나아갈 수 있게 작은 갈등과 욕망을 내어놓아야 할 때”라며 “부산영화제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게 어른들의 박수와 협력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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