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기억-WBC 리뷰⑤]2006년 3월15일 일본전...세계야구의 중심에 서다

  • 등록 2009-02-28 오전 8:40:17

    수정 2009-02-28 오후 9:18:42

▲ 사진=KIA 타이거즈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국 야구가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3년 전 영광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2006년의 추억은 여전히 어제 일 처럼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비단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우리가 걸었던 승리의 길 속에선 '다시 한번' 이길 수 있는 해법도 찾아볼 수 있다.

▲2006년 3월15일 일본전
실은 져도 되는 경기였다. 6점차 이내로만 져도 세계 4강이라는 최대 목표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감은 최고였다. 누구도 '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시아예선에서 이미 한차례 일본을 꺾으며 기세가 올라와 있는 상황.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또 한번의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승부는 팽팽했다. "일본을 반드시 이기겠다"며 선발을 자청한 박찬호는 5이닝을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제 몫을 다했다. 이어 등판한 전병두 김병현도 모두 무실점 행진.

대회 내내 빛났던 한국의 수비는 이날도 승부처서 힘을 발휘했다. 0-0이던 2회말 2사 2루. 우익수 이진영은 사토자키의 우전 안타 때 빠르고 정확한 송구로 홈을 파고들던 이와무라를 잡아내며 '국민 우익수'의 실력을 뽐냈다.

그리고 8회. 매번 한.일전의 승부처가 됐던 그 이닝에 다시 한번 역사가 쓰여졌다.

1사 후 김민재가 볼넷을 얻어 출루했고 다음 타자 이병규가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이때 김민재가 3루까지 파고들었다.

아웃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중견수 긴죠의 송구는 바운드되며 3루수 이마에의 글러브를 외면했다. 눈이 터질 듯 힘껏 내달렸던 김민재는 공이 바닥에 떨어졌음을 알아챈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만화가 최훈은 이 장면을 놓고 "기합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찾기 어려웠다.

1사2,3루. 그리고 타석엔 이종범이 들어섰다. 대회 내내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팀을 이끈 대표팀의 주장.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 그의 방망이에 전해졌다.

이종범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신께서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 테스트를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대~한민국"의 함성은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상대는 일본 불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던 후지카와였다. 직구의 위력이 일본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 이종범은 볼 카운트 1-2에서 그 후지카와의 4구째를 때려내 좌중간을 갈라버렸다.

전광판엔 '2'라는 숫자가 아로새겨졌다. 이종범은 3루를 욕심내다 아쉽게도 태그아웃 됐다. 그러나 관중석은 귀환하는 영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아마 그의 야구 인생에서 아웃된 뒤 받은 최고의 박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게도 마지막 위기가 찾아왔다. 9회 구대성이 니시오카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며 흔들렸다. 1점차로 쫓긴 9회 1사 1루. 한국 벤치는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아직 신인이었지만 풋풋함 보다는 담대함이 더욱 빛나던 시절의 오승환이었다. 오승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두명의 타자를 내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매조지했다.
이로써 한국은 전승으로 4강행을 확정지었다. 감격에 겨운 선수단은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이때 서재응이 슬쩍 무리에서 벗어나 태극기를 들고 마운드에 오르더니 그 한 가운데 꽂은 뒤 입을 맞췄다.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거짓말로 멋있어지면 안되는데..."

경기 후 최고의 영웅은 단연 결승타의 주인공인 이종범이었다. 이종범에 대한 팬들의 찬사는 경기 후 한참 동안 인터넷을 달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9회 구대성에서 오승환으로 교체되는 순간 카메라에 잡힌 이종범의 행동에 대한 해석이었다. 이종범은 글러브를 벗어 누군가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네티즌 들은 이 장면을 두고 "이종범이 오승환에게 "우리는 글러브 벗고 쉬고 있을테니 네가 다 처리하라"고 응원했던 것"이라며 흥분했다. 실제로 오승환이 두명을 내리 삼진으로 잡아냈으니 시나리오는 더욱 완벽하게 짜여진 셈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이종범은 김재박(LG 감독) 수비코치에게 수비 위치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글러브는 김 코치가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 벗었다.

경기 후 팬들의 반응을 전해들은 이종범은 슬몃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해주는건 고맙지만 거짓말로 멋있어 지면 안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솔직하게 밝혀야겠다."

이종범은 실제로 대회가 끝난 뒤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글러브로 사인을 보내던 모습보다 더욱 멋있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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