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범죄극인가 다큐인가…대세 열연·라이징 앙상블에 홀린다[봤어영]

3월 27일 개봉…본 적 없는 독특한 현실 범죄극
페이크 다큐 같아…혼란스럽지만 매혹적인 이야기
김성철·김동휘·홍경, 충무로 기둥될 라이징들의 열연
손석구가 표현한 현실 기자의 딜레마…후반부는 아쉽
  • 등록 2024-03-18 오전 7:00:00

    수정 2024-03-18 오전 10:33:05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것은 범죄극인가, 현실을 투영한 페이크 다큐인가. 혼란한 현실을 비웃고, 우리 일상과 멀지 않아 뒷맛은 씁쓸하다. 오락 영화를 기대했다가 고증과 풍자에 뼈 맞고 여운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이전까지 본 적 없는 신선한 현실 범죄극이자, 지금도 쏟아지는 뉴스와 인터넷 댓글들을 의심하게 만들 블랙 코미디 도시 괴담. 영화 ‘댓글부대’다.

‘댓글부대’는 대기업에 대한 기사를 쓴 후 정직당한 기자 임상진(손석구 분)에게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팀알렙’의 멤버 찻탓캇(김동휘 분)이 제보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장강명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기도 하다.

‘댓글부대’는 누구나 한 번 쯤 의심해봤을 법한 온라인 여론 조작에 얽힌 음모론을 소재로 다룬 현실 서스펜스 범죄극이다. 여론 조작과 각종 비리를 간접적으로 다룬 누아르 영화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그런 의혹을 받았던 실제 사회, 정치적 사건들도 있다. 그럼에도 ‘댓글부대’는 기존의 작품들과 확실히 다르다. 가짜인지 실체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상상하고 의심해봤을 온라인 여론 조작의 생태계를 처음 직접적으로 조명한 작품이기 때문. 특히 오랜 취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 문화에 대한 생생한 고증 작업이 빛난다.

영화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만전’과 관련한 비리 기사를 쓴 신문사 사회부 기자 임상진의 악연을 조명하며 시작된다. 어렵게 회사를 설득해 만전의 비리 기사를 세상에 내보낸 임상진은 순식간에 자신의 기사가 오보로 낙인 찍히고 기사로 인해 사람까지 죽었다며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파장이 커지자 회사에선 보여주기식으로 6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복직을 약속받았지만 14개월이 지나도 회사엔 연락이 없다. 벼랑 끝에 몰리고, 기자로서의 자부심까지 손상된 임상진에게 어느날 자신이 온라인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댓글부대 ‘팀알렙’(찡뻤킹, 찻탓캇, 팹택)이라 주장하는 인물 찻탓캇(김동휘 분)이 다가온다. 찻탓캇은 임상진의 기사는 오보가 아니었고, 그를 향한 악플들도 전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임상진은 처음에 이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찻탓캇의 제보가 자신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도울 특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걸고 찻탓캇이 속한 ‘팀알렙’의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강렬히 빨려든다. 허구인지 실제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혼란으로 관객들을 이끌고 뒤흔든다. 영화에는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고려해 주요 인물 및 기업의 이름을 가명으로 바꿔 전달한다’는 안내 문구가 등장한다. 이 안내조차 허구 소설 속의 문구인지, 실제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더욱이 초반에는 90년대 PC 통신을 시작으로 2000년대 유료 인터넷의 도래를 거쳐 2010년대 각종 밈과 댓글 갈등이 난무한 인터넷 커뮤니티 시대의 역사를 조명한다. ‘완벽한 진실보단 거짓을 담은 진실이 더 진실같게 느껴진다’는 이 영화 대사처럼, 허구를 표방하나 실제 우리가 경험한 인터넷 문화의 현실적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기에 실제처럼 몰입할 수 있다. 임상진이 댓글부대와 댓글부대에 결탁한 거대 세력의 진실을 좇는 범죄극이지만, 여론과 언론의 민낯을 극명히 드러내는 페이크 다큐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출도 강렬하고 재기발랄하며 과감하다. 커다란 스크린이 핸드폰, 노트북 화면이 됐다가 임상진의 방이 되고 팀알렙의 집이 된다. 음모론이란 소재 자체가 어느 정도 결말과 빌런의 상상이 가능한 스토리임에도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역시 감각적이며 현란한 화면 전환과 편집 덕분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도 많다. 실제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온갖 인터넷 밈과 댓글, 짤들을 재치있게 패러디해 피식 미소를 자아낸다.

독특한 이야기의 구조도 인상적이다. 임상진과 ‘팀알렙’의 시점이 철저히 고립돼있다. ‘팀알렙’은 임상진을 알지만, 임상진은 ‘팀알렙’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제보자 찻탓캇만이 ‘팀알렙’, 임상진과 모두 연결된 유일한 중개자다. 찻탓캇이 전하는 팀알렙의 존재가 진짜인지, 소설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스토리는 힘있게 달려나간다.

배우 손석구와 김성철, 김동휘, 홍경의 뛰어난 열연과 앙상블이 이야기와 인물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팀알렙’으로 활약한 김성철, 김동휘, 홍경 3인방의 캐릭터성과 앙상블이 백미다. 세 명의 극 중 외적 스타일과 성격이 제각각인데도 동떨어지지 않는다. 세 명이 ‘팀알렙’ 자체이자, 하나의 유기적 존재로, 캐릭터의 개성과 팀워크를 모두 살려낸 열연이다. 여론 조작의 스케일과 그로 인한 파장이 커질수록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는 찡뻤킹(김성철 분)과 찻탓캇, 팹택(홍경 분) 각각의 모습도 세밀하게 담았다. 관객 입장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세 명 중 어느 쪽의 모습에 가까울지 생각해보게 한다. 앞으로 충무로의 기둥이 될 세 라이징 스타의 연기 파티를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다. 유독 눈에 띄는 변신은 홍경이다. 여론 조작의 위력에 취한 섬뜩한 모습과, 관심과 친구들의 인정이 필요한 미숙한 소년의 얼굴을 오가는 연기가 압권이다.

손석구가 맡은 임상진은 이야기의 진행자 같은 캐릭터다. 동시에 여론 조작 세력의 농간에 끊임없이 휘둘리지만,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다. 명예욕을 가진 속물 근성과 직업적 사명을 동시에 지닌, 어딘가에 존재할 현실 기자를 훌륭히 소화했다. 진실에 가까이 가려 할수록 혼란이 가중되며 서서히 미쳐가는 임상진의 모습이 관객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대체로 기자들과 인터넷의 세계를 공들여 취재한 매혹적인 이야기이건만, 후반부 마무리는 아쉽고 허망하다.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다 도돌이표가 되는 격이다. 실재할 것 같은데 실체를 본 적 없고, 완전한 허구라기엔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이 현상의 성격을 반영한 결말이지만. 화끈함, 사이다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다만 여운은 짙다.

3월 27일 개봉. 안국진 감독. 1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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