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블로그] '혹사'를 인정하지 않았던 구대성의 조용한 퇴장

  • 등록 2010-08-17 오전 8:18:53

    수정 2010-08-17 오전 8:19:14

▲ 구대성 [사진제공=한화]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그가 대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믿을 수 있는 투수는 사실상 그 혼자였다. 매일같이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팔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덕아웃에 앉아 있을 때 그의 팔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닝이 바뀌면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 대회 우승은 그의 학교가 차지했다.

결승전이 끝난 후 감독은 방송 인터뷰 도중 목이 메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던질 수 있다고 해 준 구대성 선수에게 감사한다.”

구대성(41)은 늘 그랬다. 고교(대전고)시절 오로지 구대성만이 믿을 수 있는 투수였다. 당시에도 매일같이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그의 빼어난 투구 속에 모교는 사상 첫 전국대회 우승을 거푸 이뤄낸다.

이효봉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버지인 고 이성규씨(전 MBC 해설위원)로부터 몸을 최대한 비틀며 공을 던지는 현재의 폼을 익힌 구대성이다. 보는 것 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오는 듯 보이는 그 투구폼으로 그는 30여년을 버텼다. 아니 그 긴 시간동안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놀라운 것은 그의 구위 만이 아니다. 구대성은 안된다고 말하는 적이 거의 없는 투수였다. 팀이 원하면 언제나 마운드에 섰고, 제 몫을 다해냈다.

프로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혹사의 아이콘이었다. 주로 마무리 투수로 뛴 구대성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00이닝 이상을 던졌다. 말이 마무리였지 6회부터 9회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똑 같은 패턴으로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그의 역투는 비단 국내 무대에서만이 아니었다. 한국 야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제경기는 당연히 일본전이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구대성은 ‘일본 킬러’라 불렸다. 바꿔 말하면 일본을 상대할 때 그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감이 엄청났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당시 한국 야구의 수준은 프로와 아마추어 혼성팀으로 나선 일본보다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일본 대표팀엔 에이스 마쓰자카와 4번타자 나카무라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구대성은 일본과 예선리그(9월23일)서 6이닝 6피안타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어 마지막 3.4위전(9월27일)서는 9회까지 완투하며 승리를 따내는 역투를 선보였다. 이날 그가 던진 공은 무려 155개였다. 더 놀라운 건 예선리그 일본전 이후 그는 단 사흘만 쉬었을 뿐이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는 시즌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대회가 끝나는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치열한 순위 싸움을 펼쳐야 했다. 시즌 도중에, 그것도 국제대회에서 155개의 공을 던진다는 건 지금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성 불패’라는 그의 별명 속엔 이처럼 핏빛 투혼이 담겨져 있다. 그는 지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마운드에 올랐던 선수다. 하지만 구대성은 “괴롭다”가 아니라 “기쁘다”고 말했다.

가장 이기고 싶은 것은 구대성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승부욕은 야구장 밖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을 정도다. 박찬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구대성은 “100원만 있으면 하루 종일 오락실에 있을 수 있었던 형”이었고, 뉴욕 메츠 시절 라커룸서 벌어진 카드놀이서 승리한 뒤 그가 보여 준 세리머니는 그의 미국 진출 이후 가장 큰 비중으로 보도된 바 있다.

구대성은 그랬다. 그는 ‘혹사’라는 말을 애초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대성은 ‘달인에게 묻는다’ 인터뷰서 “요즘 선수들이 몸은 예전보다 더 커졌는데 힘은 오히려 떨어진 것 같다. 예전 선배들은 우리 땅에서 나는 밥 열심히 먹고 운동했는데 요즘 선수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어찌됐든 힘 쓰는 건 옛날 선배들이 훨씬 나았다. 혹사에 대한 기준을 따지려면 한도 끝도 없다. 지금 기준이면 옛날 선배들은 1년 하고 말았어야 한다. 며칠을 내리 던지기도 했는데 지금 선수들은 절대 못 그러지 않나”며 “혹사의 기준은 없다. ‘선수가 어떻게 준비하고 힘을 기르고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보호한다고 오래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몸이 돼 있으면 된다. 많은 공을 자주 던질 수 있도록 몸 관리를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퇴장이 가슴을 더욱 공허하게 하는 이유다. 늘 그 자리에 있어 고맙다는 말도 채 전해보지 못했는데 또 그렇게 말 없이 떠나려 하고 있어서다.

구대성의 대단함은 그저 많이 던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대성은 그 누구보다 오래 던진 선수이기도 하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길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야구 감독에게 그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 많이, 그리고 잘 던져줬으니까. 팬으로서도 그저 감사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오래 버텨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퇴장이 아직은 이른 감이 있지만 그의 오랜 투혼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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