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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2012년 2월20일은 한국 야구 첫 독립리그 구단인 고양 원더스에 매우 의미 있는 날이 됐다. 창단 이후 첫 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일본 고치에서 스프링캠프 중인 고양 원더스는 이날 고치 구장에서 열린 일본 시코쿠리그 소속 독립리그 팀, 만다린 파이러츠와 연습 경기서 5-4로 승리를 거뒀다.
경기 내용도 매우 짜릿했다. 1-4로 뒤지던 경기를 홈런 3방(2개는 9회말, 연속 타자 홈런)으로 따라잡았고, 계속된 2사 만루서 끝내기 안타가 나오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2패 뒤 거둔 1승.
경기 후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에게선 의외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김재현이가 한번 제대로 보여준 것이 큰 힘이 됐다."
이날 승리의 주역이자 고양 원더스의 희망으로 자라고 있는 선수들에게 김재현이 도움을 주었다는 뜻이었다.
김 감독은 가볍게 안부를 물은 뒤 곧바로 김재현에게 방망이를 들게 했다. 선수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 좋은 스윙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 도중 한동안 선수 지도에 나서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자신은 물론 코치들도 말 없이 선수들의 훈련만 지켜보도록 했다. 대신 선수들 스스로 자신의 동료가 어떻게 치는지 관찰하도록 했다. 왜 그렇게 치라고 하는 지 보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고양 원더스엔 A급 선수가 전무하다. 자신은 물론 팀이 이겨 본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도 없다. 가르치는 것 못지 않게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필요했다. 류현진이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 전설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빠른 스윙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재현은 그들에게 매우 훌륭한 교재였던 셈이다.
김 감독의 부탁을 받은 김재현은 여전한 날카로운 스윙으로 '짧고 빠르게 치면서도 멀리 타구를 보내는 법'을 시범보이느라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김 감독은 "김재현이 덕분이다. 안태영이 김재현에게 배운 뒤 한순간에 바뀌었다. 코치들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제서야 알아차린 듯 했다. 여기에 백 스윙 때 타이밍 맞히는 법을 가르쳤더니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안태영은 최근 2경기서 3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20일 경기서도 6회와 9회 연타석 홈런을 쳤다. 특히 9회 홈런은 좌투수의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허리가 빠진 채 가볍게 포인트만 맞추고도 우중간을 넘겨버려 모두를 놀라게 했다.
김재현이라는 좋은 교과서가 한눈 팔지 않고 수업에 열중했던 학생들(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된 셈이다.
김 감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은 그럭 저럭 야구답게 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다행인 수준"이라면서도 "안태영이나 강하승(좌익수) 등 좋아지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아이들이 조금씩 야구하는 재미, 이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날 승리가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