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인터뷰]김성근 감독이 말하는 베테랑으로 사는 법

  • 등록 2013-07-12 오전 10:08:32

    수정 2013-07-12 오전 10:18:17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 사진=권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박은별 기자]세상의 시선은 베테랑 선수에게 유독 냉정하다. 잠깐이라도 예전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늙었네”, “이제 전성기가 지났네”, “유니폼을 벗을 때가 됐다” 등등 날선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보여지는 모습이, 또는 기록이 전부가 아니다. 야구는 인생과 같아서 공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럴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많은 신인들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고참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랜 세월 실전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쌓인 고참들의 경험담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하곤 한다.

야구도, 세상사는 이치도 똑같다고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은 말한다. 고참의 존재 이유다. 김성근 감독은 “조직이 위기일 때 버틸 수 있는, 위기를 넘겨낼 수 있는 힘이 고참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고참은 조미료” 그 존재의 이유

김성근 감독은 “요즘 야구도, 세상도 경험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고참, 그 존재의 중요성을 아직 세상이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야구에서부터 그렇다.

김 감독은 “128경기를 하는 동안, 고비 때 필요한 것이 베테랑이다. 우리나라는 128게임 전부를 고참이 해주길 원하니 문제다. 1년 내내 고참의 득을 보려고 하면 안된다. 그중 30게임이 고비인데 그 고비를 넘겨내는 힘, 승부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참의 경험이다. 그 30경기, 아니 단 한 경기에도 승부처에서 잘 해준다면 그것으로 1년 연봉을 다 받아도 충분하다. 그것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경험이다”고 했다.

김 감독은 그러면서 예를 들었다. “지금 LG에 권용관, 이병규(9번), 류택현 등 고참들이 없었으면 정말 어쩔뻔 했나. 그들이 살아나 준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호준(NC)도 마찬가지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이 때문에 거기서 포기했다면 지금의 이호준도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야구에선 ‘직감’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감이 좋았어요”, “슬라이더가 올 것 같았는데 노린 것이 좋은 결과로 연결됐습니다.” 등 승리 소감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직감은 단순히 요행을 바란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간 경험의 축적물이라는 것이 김 감독이 말하는 ‘감’이다. 즉, 경험 많은 선수들이 감도 좋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베테랑의 존재 이유다.

김 감독은 “야구에 있어 데이터분석, 판단, 결단이라는 건 직감적으로 움직여야하는데, 경험이 없다면 직감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야구 감독입장에서 볼땐 경기를 끌어가는데 직감이 80~90% 작용한다 그 감으로 사람을 적재적소에 얼마나 잘 움직이느냐가 승부처다. 명의를 판단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90%는 어떤 의사든 다 똑같이 본다. 마지막 5%가 중요하다. 어떻게 판단하고 결단하느냐, 사람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문제는 경험, 경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고참은 조미료라는 비유도 덧붙였다. 많이 집어넣어도, 조금 집어넣어도 안된다. 조미료가 없음 도통 맛이 나질 않는다. 음식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조미료. 고참 역시 조직과 사회에선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떨어지는 석양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조직 롱런 비결

그렇다면 이제 이 고참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제대로 쓰느냐가 문제다. 김 감독은 신인이나 고참이나 모두 같은 전력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새롭고 신선한 것이 인기있고 대우받는 시대지만, 야구에선 새로운 선수를 넣는다고 꼭 답이 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고참의 선수생활을 얼마나 더 늘릴 수 있느냐가 팀의 전력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면 좋은 줄 안다. 나이를 먹었다고 버리면 전력을 버리는 일이다. 낡은 걸 버리고 새로운 걸 얻기보단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해야 한다. 억지로 조직을 만들려는 건 좋지 않다.”

김 감독은 가득염(롯데 방출 후 2007년 SK 입단. 그해 우승 주역) 현 두산 코치의 예를 들었다.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다고 롯데에서 쫓겨난 뒤 우리가 데려왔다. 우리가 바란 건 딱 한 타자다. 그도 조직에 헌신적인 협조를 했고 자신의 희소가치를 높여준 덕분에 우리도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도 야구를 그만둘 위기에서 4년간 더 밥을 먹고 살지 않았나. 적재적소에 고참을 쓴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베테랑이 필요하지 않는 곳은 없다. 어디든 쓸모가 있다는 게 김 감독이 바라보는 고참의 모습이다. “베테랑의 1%가능성이 조직을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 혹은 강해지느냐 약해지느냐의 분수령이 되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직 리더는 그 고참들의 존재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팀에서 고참이 나이를 먹게 되면, 존재 자체가 참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고참의 존재를 인정하고, 손아귀에 넣지 않으려고 해야한다. 조직에서 잡으려고 하기보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한다. 떨어지는 석양 순간, 마지막을 어떻게 살리느냐, 그리고 그 노장들이 얼마나 활력소를 주고 조직 속에 빛나게 해주느냐가 조직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이다”고 했다.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 사진=권욱 기자
◇고참,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라


1982년 OB베어스의 투수코치로 프로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성근 감독. 30년 넘게 팀을 이끌어온 김 감독은 진정한 고참, 진정한 주장으로 김원형 현 SK 코치를 꼽았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고참이었다. 가장 제대로 주장다운 역할을 했지 않나 싶다. 난 그에게서 불만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없다”는 게 김성근 감독이 제일 먼저 김 코치의 이름을 부른 이유다.

김성근 감독은 “2007년부터 2년간 우승하는 동안 자신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불만, 불평한 경우도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시리즈 출전을 못시켰는데도 불만없이 팀을 이끌어 줬다.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 나중에 ‘조금은 아쉬웠다’는 말에 내가 더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런 모습이 고참으로, 주장으로 좋아보였다”고 했다.

자신을 낮추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은 기본.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라는 것 역시 김성근 감독이 고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난 고참을 쓰긴 쓰돼 고참 취급을 안했다. 연습할 땐 고참이라는 것이 없었다. 똑같이 시켰다. 인간대우는 하지만 하나의 선수로 똑같은 전력으로 보고 해왔고 그렇게 하고 있다.”

스스로를 단련시켰던 그 방식 그대로다. 김 감독은 청소년 시절 일본의 가난한 재일동포의 아들이었다. 스스로 벌지 못하면 학교도 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 시절을 괴롭게만 기억하지 않고 있다. 그 시간을 스스로 단련하는 기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우유 배달을 할 때였다. 예를 들어 처음엔 한 시간에 서른 집을 배달할 수 있었다면 그 다음부터 그 시간을 줄이려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씩 성취를 느꼈고, 그런 노력을 통해 내 체력은 더 강해졌다. 배달을 하며 하나씩 얻어먹을 수 있었던 우유 덕에 내가 더 튼튼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감을 가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별 대우, 고참 취급을 받으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경쟁에선 멀어질 수 있다는 게 김 감독의 철학이다. “고참 대우를 해주는 순간 그만두라는 소리다. 본인들은 대우를 받으면 고마워하겠지만 자기가 빨리 사라지는 케이스가 많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지도자, 조직 역시 고참에 대한 특별대우는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대우를 해주려고 하니 조직으로선 부담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만두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1%의 기술을 터득해라

“야구엔 정년이 없다. 한계라는 건 없다. 스스로가 한계를 설정해 놓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김성근 감독은 발상의 한계를 정해놓지 않는다. 사람의 가능성이라는 건 무궁무진하다고 믿는 그다. 김 감독이 늘 “벌써 속의 아직”이라는 기적을 추구하는 이유다. ‘벌써’와 ‘아직’이라는 단어엔 큰 어감차이가 있다. 김 감독은 그중에서도 아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직이라는 단어엔 희망적 의미가 더 담겨있다.

김 감독은 “벌써 이만큼 나이 먹었으니까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사람의 가능성이라는 건 끝끝내 추구해야한다.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한다. 처음 박진만(SK)을 삼성에서 데려왔을 때도 4년 연속 잘 해줄 것이라곤 생각못했다. 마지막 0.1%의 기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그 기적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젊은 감각을 유지하라고도 강조한다. 고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노하우 중 하나다. 김 감독은 “나이가 들수록 20~30대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오더다. 내가 옷을 젊게 입는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옷을 젊고 산뜻하게 입어야 기분도 더 좋아지고 신선해진다는 것. 친구들에게도 ‘옷부터 좀 바꿔입으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한 김 감독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고참들에게 당부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아무도 못하는 1%의 기술을 터특해라”고 했다. “야구에서 상대의 사인을 훔치는 것 또한 기술이다. 선수들에게 예의를 가르치는 코치, 선수들을 융화시키는 능력이 좋은 코치 등 아무도 잘 못하는 그런 경지에 이르는 것만으로도 고참으로서 얼마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이런 모습 처음이야!
  • 이제야 웃는 민희진
  • 나락간 '트바로티' 김호중
  • 디올 그 자체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