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파이터' 임수정 "링에 섰을 때 가장 행복해요"

오른주먹 부상 딛고 TKO승…9월 세계 아마추어 무에타이 챔피언십 우승 목표
  • 등록 2008-04-08 오전 10:58:54

    수정 2008-04-08 오전 10:59:00


[노컷뉴스 제공] "네 한계를 아는 건 좋지만 남이 정해놓은 한계에 얽매이지 마라" (영화 '그레이시 스토리' 중)

지난 29일 국내격투기대회 '더 칸' 공식 기자회견장. 대부분의 선수들은 상대와 기싸움을 벌이며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임수정(23·삼산이글체육관)은 달랐다. 한 번 웃음보가 터진 그는 급기야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대선수를 쳐다보며 포즈 취하는 게 쑥스러웠다나.

그런데 웃음 많은 이 아가씨, 눈물도 흔하다. 경기장에서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많고, 이날 인터뷰 중에도 가족 얘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기장에선 매서운 눈매에 강펀치를 날리는 파이터이지만 알고 보면 여린 그다. 그렇다면 임수정의 소원은? "올봄엔 친구들이랑 벚꽃 축제를 꼭 가보고 싶어요. 도시락 먹으면서 피크닉도 즐기구요." 그의 미소가 활짝 핀 벚꽃보다 화사하다.

▲ 화끈한 TKO승에 가려진 아픔

밤 9시가 넘은 시각. 조용하던 서대문구 북가좌동 삼산이글체육관에 갑자기 시원한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다. 임수정이 천안에서 손가락 치료를 받고 서둘러 올라온 참이다. 피곤할 법도 하건만 그의 표정은 밝다. "이제 오른 주먹이 쥐어져요. 치료 효과 짱이에요."

임수정은 지난 30일 '더 칸' 대회에서 177cm의 장신선수 아쉬리(호주)를 맞아 3라운드 레프리 스톱 TKO승을 거뒀다. 그의 무차별 펀치에 아쉬리의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 특히 라이트 펀치가 불을 뿜었는데, 여기엔 숨겨진 아픔이 있었다. "경기 전부터 오른 주먹이 많이 아팠어요. 3라운드부턴 주먹에 힘을 싣지 못했죠."

오른손이 더 센 임수정에겐 치명적인 부상. 세컨드를 보던 이기섭 관장은 계속 "라이트 치지마"라고 외쳤다. 주먹을 내밀 때 그가 오른 주먹을 툭툭 털어내는 동작을 취하자 그의 부상 사실을 아는 몇몇 지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TKO승을 거두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다쳤겠죠?"

이날 이후 임수정(용인대 격기지도학과 3학년)은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전공 수업 전에 앞에 나가서 박수 받는데 기분 좋았죠. 하하" 그뿐 아니다. 그는 경기 직후 포털 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화기에 불났습니다. 1위야, 1위 하면서." 미니홈피도 폭주했다. "1촌 신청은 천천히 수락해드릴게요." 특히 "'여자 격투기는 시시하다는 편견이 임수정 선수 경기 덕분에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며 그는 웃는다. 임수정은 척박한 국내 여자 격투기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 "링 위에 섰을 때 가장 좋아요"

"격투기 선수가 된 걸 후회한 적도 있죠. 제 또래 친구들이 누리는 사소한 즐거움을 저는 포기해야 할 땐 더 그래요." 임수정은 다음날 훈련에 지장을 줄까봐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다. 예쁘게 꾸미고 싶지만 훈련하랴, 수업 들으랴 늘 시간이 모자라다. 링에 오르기 전엔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엄습하곤 한다. 때때로 운동에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열심히 훈련해서 경기도 진짜 잘했는데, 승부에서 졌을 땐 슬럼프에 빠져요."

결코 만만치 않은 격투기 선수 생활. 힘든 여건 속에서도 임수정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뭘까. 우선 뚜렷한 목표가 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건 결과뿐이지만 제겐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더 소중해요." 25전 18승 7패(8KO)의 전적을 보유한 임수정은 그래서 모든 시합이 목표를 향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팬들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 "경기장에서 '임수정 파이팅!' 소리를 들으면 '한 대 더!' 하면서 저도 모르게 힘이 솟아요."

무엇보다도 임수정은 링 위에 섰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경기장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내려갈 때까지 각기 다른 느낌으로 짜릿해요." 1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임수정은 "그때만큼은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것 때문에 시합을 계속 뛰게 되는 것 같다"며 웃는다.

▲ "경기장에 애국가 울려보는 게 소원"

"시간이 딱 멈췄죠. 시합 끝나고 혼자 화장실에 숨어서 엄청 울었어요." 지난 12월 태국에서 열린 세계 아마추어 무에타이 챔피언십 얘기를 꺼내는 임수정의 말투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이 대회 세 번째 출전. 금메달을 노렸다. 한 달간 강훈련을 묵묵히 소화해냈다. 운동만 무섭게 파고드는 임수정을 보고 당시 함께 훈련하던 선수들도 "너 괜찮니?, 너 미쳤구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출발은 좋았다. 예선전에서 우승후보인 태국선수를 눌러 현지신문 1면에 나기도 했다. 하지만 12월 3일 열린 준결승에서 네덜란드 선수에 판정으로 져서 동메달에 그쳤다. "그 시합 후 가장 힘들었죠." 허탈한 심정을 감추려 오기를 부렸다. 12월에만 4번의 시합을 뛰었다. 결국 탈이 났다. 무리한 일정으로 주먹이 다 망가졌다.

아쉬운 감정은 훌훌 털어버렸다. 기회는 또 다시 왔다. 올해 세계 아마추어 무에타이 챔피언십은 9월에 부산에서 열린다. 학원스포츠를 경험해보지 않은 임수정의 소원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를 올리는 것. "이번엔 꼭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할 거예요. 응원 많이 와주세요."

2003년 "살을 빼려고" 무에타이를 시작했다는 임수정은 어느새 한국 여자 무에타이 1인자를 넘어 세계 1인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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