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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양준혁의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그의 프로필에서 한참동안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1993년 타율 장타율 출루율 1위,홈런 타점 2위...
널리 알려진 일들이 무척이나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당시 양준혁은 신인이었다. 머릿속엔 '왜 요즘은 신인급 강타자가 나오지 않는걸까...'란 생각이 한참 머물러 있었다.
고민은 인터뷰 동안에도 계속됐다. 결국 끝날때 쯤 양준혁에게 물었다. "왜 요즘은 (당신같은) 대형 타자들의 성장이 더딜까요?"
양준혁은 우선 그동안 몇차례 거론되던 얘기들을 꺼냈다. "좋은 자질을 갖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 투수를 택하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초창기 선수협 중심인물 답게(?) "외국인 선수가 계속 2명이 되면 이런 분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좀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자 진짜 얘기를 꺼냈다. 우리의 야구에 대한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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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느낀 충격도 덧붙였다. "대만 애들은 스윙을 자신 있게 씩씩하게 돌리더라. 그걸 보면서 우리가 언젠가는 잡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국 그 대회에서도 8번타자한테 홈런 맞고 우리가 지지 않았나. 큰 선수가 나오려면 그렇게 자꾸해야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크게 키울 수 있는 선수는 크게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팀 배팅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승리를 위해 자신의 스윙을 제한할 수 있는 능력의 의미가 분명 포함돼 있다. 실제로 팀 배팅이 거포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팀배팅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존재하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거포 데이빗 오티스는 미네소타 시절만 해도 그저 그런 힘 좋은 타자였지만 보스턴 이적 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성장했다.
미네소타는 메이저리그서 첫 손 꼽히는 팀 배팅 강조 구단이다. "타자들의 머릿 속에 항상 진루타에 대한 의식을 심어놓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미네소타는 지난해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만큼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장거리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MVP 저스틴 모노는 34개의 홈런을 쳐냈는데 이는 미네소타 선수로는 지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홈런 30개를 넘어선 것이었다. 반면 보스턴은 팀 배팅이나 번트 보다는 장타에 의존하는 공격을 선호하는 구단이다.
양준혁의 얘기를 듣다보니 문득 가슴 한 켠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지금 어딘가에서 한국의 오티스가 재능을 썩히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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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달인에게 듣는다 1> 양준혁, 타자에게 변화구란 2007-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