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의 1S1B] 고참, 그 존재의 이유

  • 등록 2008-04-14 오후 12:35:19

    수정 2008-04-15 오후 2:13:28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13일 경기 전 목동구장 원정팀 라커룸. SK 포수 박경완과 볼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유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유격수 나주환이었다. 그는 동그래진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경완이 말을 마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볼카운트 1-2에서 말입니다. 직구 파울이 뒷그물로 갔거든요. 잘 친건 아니고 방망이가 좀 늦었어요. 근데도 직구가 또 들어오는거에요. 계속 그런게 헛갈리니까 2스트라이크만 되면 무지 힘듭니다."

흔히 파울 타구가 뒷그물로 가면 타이밍이 맞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타자가 그 구종을 노렸거나 컨디션이 좋은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나주환의 말은 직구 파울이 뒷그물로 갔으니 어찌됐든 상대 배터리가 변화구 승부를 할거라 생각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박경완은 물론 옆에 있던 투수 가득염까지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네가 그런 모습 보이는 순간 바로 호구 잡히는거야."

이후 설명이 이어졌다. "투수와 포수는 타이밍이 맞아서 뒷그물로 갔는지 늦게 쳐서 그랬는지 다 알아. 다음 공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다 예상할 순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을 치러가는 순간 고민해선 안된다는 거야. 그런 타자는 우습게 보일 수 밖에 없어. 알았냐."

나주환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은 '상식'이었지만 박경완과 가득염이 들려준 것은 '경험'이었다. 나주환은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 응어리 하나가 풀린 듯한 표정이었다.

야구는 수학과는 달라서 공식을 쫓아가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오랜 세월 실전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쌓인 고참들의 경험담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한다.

한화 투수 안영명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 쟁쟁한 선배들의 모습만 잘 지켜봐도 투수가 어떻게 생활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의 시선은 베테랑 선수들에게 냉정하다. 예전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장 날 선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덕아웃 뒤켠 어딘가에선 지금도 그들이 뿌리는 희망의 씨앗들이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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