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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은 영화 `은교`에서 70대 노시인 이적요로 분한 주연배우 박해일(35)의 도전, 고생을 이같이 말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노시인. 게다가 손녀뻘인 소녀 은교를 만나면서 내면이 흔들리는 인물. 노인의 가면을 쓰고, 노인다운 표정과 동작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을 연기한다는 건 제아무리 베테랑 배우라도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나이에 노인 연기를 하라고?` 처음에는 그 또한 당황했다. 원작을 읽고는 궁금해졌다. `당신 나이대의 젊은 배우가 이적요를 연기하면 젊음과 늙음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의 설명을 들은 후엔 호기심이 생겼다. 더욱이 4년 전 `모던보이`에서 호흡을 맞춰 감독에 대한 믿음도 있던 터였다. `해보자!` 박해일은 그렇게 이적요가 됐다.
탑골공원 일화는 유명하다. 촬영 전 막걸리를 사 들고 탑골공원을 찾아 그곳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인의 기운을 몸소 피부로 느끼고 관찰한 것. 이 밖에도 많은 자료를 챙겨 봤다.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의 스틸 사진, 인터뷰 영상, 할리우드에서 특수분장으로 노인이 된 배우들의 모습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이 든 국내, 외국 배우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 것이냐, 따라 하는 것이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았다.
"노시인 이적요에 접근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실리콘 조각을 온몸에 붙인 상태에서 연기하는데 그 이질감을 없애기가 초반에는 정말이지 어렵더군요. 속옷에 머리카락 짧은 게 하나 끼여 거치적거리는 느낌이랄까요? 어떻게든 손을 넣어 뽑아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답답한 기분 있잖아요. 촬영 전 그토록 의지했던 분장에 의상, 세트 등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결국 주체는 나구나, 나로부터 출발해야 틀리지 않겠다 새롭게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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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은교`를 촬영하며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청춘을 갈망하는 노시인을 연기하다 보니 때론 어쩔 수 없이, 분장으로 노인의 몸을 갖고 보니 때론 자연스럽게.
박해일은 "전신 분장을 하며 느낀 건데 촬영 회차가 늘수록 피로감 또한 만성적으로 쌓여가더라"라면서 "관절이 안 좋아지고 결림도 있고, 두통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반면, 생각은 많아지던데···. 정말이지 배우로 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 든 제 모습도 상상해 봤어요. 그때까지 연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그런데 제가 오늘 말을 좀 정신없게 하고 있진 않나요? 이상하게 정리가 잘 안 되는 느낌인데···. 원체 생각이 많은데 `은교` 찍고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말을 하다가도 생각을 하니 어쩌면 좋을까요."
(사진=권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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