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길의 뒷담화]문 대통령 질책이 억울한(?) 통계청장

통계청 조사불응 가구에 과태료 부과 여부 두고 논란
文 “시대착오적 행정” 질책에 “검토 안했다” 잘못 해명
현실 외면한 가계부 조사 강행탓, 조사 불응률 26%로 높아져
  • 등록 2019-01-15 오전 12:03:00

    수정 2019-01-15 오전 10:14:25

문재인 대통령,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신욱 통계청장.[이데일리 노진환 신태현 기자, 통계청 제공]
※모든 정책에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습니다. 세종관가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강신욱 통계청장은 지난 7일 “(통계조사를 거부하는) 불응 가구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조치”라고 질책한 뒤, 강 청장은 긴급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조사 불응 가구를 대상으로 한 과태료 부과는 검토한 적도 없다는 게 강 청장의 해명의 핵심입니다. 조직적 불응이나 조사 불응을 선동하는 행위만 제한적으로 과태료 부과를 검토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잘못된 보도를 보고 확인도 없이 통계청을 ‘깼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강 청장 브리핑과 달리 통계청이 불응 가구에 과태료 부과를 검토한 건 사실입니다. 현장 의견도 수렴했고 법적 근거, 해외 사례도 검토했습니다. 다만 통계청 관계자들은 과태료까지 검토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57년간 유지된 페널티, 美·日 벌금, 영국은 페널티 없어

우선 법적으로 보면 표본으로 선정된 가구·기업이 응답을 거부하면 과태료를 무는 게 맞습니다. 통계법(41조)에는 ‘(통계조사에) 응답 요구를 거부·방해·기피하거나 거짓으로 자료 제출 또는 응답을 한 자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통계법 시행령(53조)에 따르면 위반 횟수에 따라 개인이나 가구는 5만원(1차), 10만원(2차), 20만원(3차 이상)을, 기업 등은 각각 50만원, 80만원, 100만원을 내야 합니다.

황당한 법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나마 페널티가 약화된 것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2년 통계법 제정 당시엔 응답 거부자에게 징역형과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이 조항은 1995년까지 34년간 유지됐습니다. 1995년에 통계법이 개정됐고 1996년부터 과태료 부과 규정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일본 법 조항을 참조해 통계법을 만들면서 페널티 조항이 포함됐는데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외에서도 통계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미국·일본·캐나다·호주에선 벌금, 프랑스에선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국가통계의 정확성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란 게 이들 국가들의 입장입니다.

특히 호주에선 표본으로 선정된 개인이 응답할 때까지 매일 벌금(하루 110~160 호주 달러·약 9만~13만원)을 부과합니다. 반면 영국은 이 같은 페널티가 없습니다. 대신에 각 기관이 통계청에 행정자료를 원활히 공유·협조하도록 엄격한 법 규정을 뒀습니다.

물론 규정과 한국의 현실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과태료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입니다. 그동안 통계청이 개인이나 가구에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에는 2012년에 4건(190만원)을 부과한 게 최초입니다. 이후 2013년부터 재작년까지 매년 2~6건에 그쳤습니다. 지난 6년(2012~2017년)을 종합하면 24건, 1254만원이 부과됐을 뿐입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조사 대상이 최대 20만개 사업체에 달하는데 24건이면 아주 미미한 수준(0.01%)”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사 불응률 26%로 높아져…현장 조사원들 고충 커져

그렇다면 사실상 사문화한 과태료 규정을 당장 폐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통계청의 고민은 현장 조사원들이 겪는 고충이 크다는 점입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최기영 통계청 지부장(노조위원장)은 “외국계 기업, 고소득자, 부유층 아파트는 조사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응답률이 낮아지면 국가통계가 망가진다”며 “이 때문에 현장 일각에선 ‘엄포용·고육책으로 과태료라도 부과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습니다. 현장의 불만·애로사항이 외부로 불거진 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분노를 산 겁니다.

하지만 진퇴양난(進退兩難) 상황입니다. 문 대통령 질책 이후 과태료 부과는 ‘강압’, ‘관료적 사고’로 낙인 찍혔습니다. 그렇다고 통계법 41조를 없애 영국처럼 갈지도 확정된 게 없습니다. 영국처럼 행정자료 협조를 원활히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금융위원회 소관 금융자산 관련 행정자료가 취합되지 않는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응답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려고 해도 국회를 통한 통계조사 예산 늘리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월 정책 개편에 따라 가계부 방식의 소득 부문 가계동향조사가 실시 됐습니다. 가계동향조사는 분기별로 소득 양극화를 측정하는 국내 유일의 국가통계입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확인하는 지표이기도 합니다.(이데일리 1월9일자<소득주도성장 성과 확인 ‘가계부 조사’..文 질책에 진퇴양난>)

그런데 가계부 조사에 응답을 거부하는 시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급기야 한 시민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민을 본인의 노예처럼 부려서 가계부를 쓰도록 강요하는 건가요”라며 “가계동향 조사를 폐지해주십시오”라고 밝혔습니다. 가계동향조사 불응률은 2010년 18.6%에서 2017년 26.3%로 매년 상승세입니다. 강남 등은 불응률이 50%를 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불응률이 높아질수록 정권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계동향조사 등 국가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은 훼손될 우려가 큽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실한 경제 통계는 부실한 경제 정책을 낳고 국민이 결국 피해를 입게 된다”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신욱 통계청장이 총대를 메고 경제통계 응답률을 높일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과태료 부과 논란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가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통계청장이 억울하다는 입장을 해명하기에 급급하기보단 대책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길 기대해 봅니다.

가계동향조사 표본으로 선정됐지만 응답하지 않는 가구가 늘면서 조사 불응률이 매년 상승세다. 2010~2016년은 소득 및 지출 부문 가계동향조사, 2017년은 소득 부문 조사 불응률이다. 지역별 자료는 비공개 됐다. 강남 등의 불응률이 50% 이상으로 타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단위=%. [출처=통계청]
통계조사를 거부한 기업에 2012년부터 과태료가 부과됐다. 최대 20만개 대상 사업체 조사에서 10건 미만으로 과태료가 부과된 건 미미한 수준이다. 조사불응 가구나 개인에게 과태료가 부과된 적은 없다. 단위=건, 만원.[출처=통계청]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호주, 프랑스는 통계조사를 거부할 경우 관련 법에 따라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영국은 벌금·과태료 규정이 없는 대신에 행정자료 제출을 의무화 하는 규정을 뒀다. 한국은 과태료 부과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 된 상태다. 행정자료 제출 규정이 있지만 예외조항이 많다. [출처=통계청]

소셜 댓글by LiveRe

많이 본 뉴스

이데일리

  •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
  •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발행인 곽재선 I 편집인 김형철
  •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