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재춘 ‘마주하다’(사진=갤러리도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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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얀 한지에 검은 먹뿐이다. 그런데 저 장면을 앞에 두고 ‘하얗고 검은 것뿐’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부서지는 햇살을 맞은 나뭇잎들이 갈라지며 길을 내고, 그 사이 육중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바위를 내리깎는 저 장관을. 색을 다 빼버린 흑백의 세상에도 뜨거운 빛은 꽂히고 차가운 물은 떨어지고 있었다.
한 점 수묵화를 장구한 다큐멘터리처럼 드러낸 이는 작가 류재춘(50)이다. 작가는 산수를 그린다. 전통기법에 현대감각을 섞는다는, 요즘 수묵화가라면 누구나 한 줄씩 걸치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작가의 작업에는 시대와 감성을 아우른 독창성이 있다. 묵직한 먹의 기량에 더해 새털처럼 가벼운 붓놀림이 걸죽한 경관을 빚어내는 거다. 유난스러운 치장이 없어도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대담한 필력 덕이기도 하다.
때로는 거칠게 휘몰아치고, 때로는 섬세하게 다독이며, 보이는 것보다 진한 풍경을 쌓는다. 굳이 비법이 있다면 ‘자연’이다. “삶에 대한 갈망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담고자 한 작업에서, 순수함을 위해 말없이 자연을 느끼고 자연의 일부가 돼 갔다”고 했다. ‘마주하다’(2020)로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자연의 치열한 정신을 봤다고.
11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도올서 여는 개인전 ‘자연의 초상’에서 볼 수 있다. ‘심산유곡’ ‘달빛’ 등 대표작 20여점을 걸었다. 한지에 수묵. 130×160㎝. 작가 소장. 갤러리도올 제공.
| 류재춘 ‘심산유곡’(2020), 한지에 수묵담채, 50×76㎝(사진=갤러리도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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