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 고양이도 구하는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⑭

밀양소방서 장우영 소방관, 작년 6월 고양이 구조 신고 접수
엔진룸 깊숙이 갇힌 주먹 만한 새끼고양이…쉽지 않은 구조에 진땀
간식 구매해 유인 끝 무사히 구조…"작은 출동도 국민들이 우릴 꼭 필요로 한다는 것 느껴"
"슈퍼히어로 같은 소방관 아니라도 든든한 '아빠 같은 소방관&apos...
  • 등록 2024-02-11 오전 6:11:00

    수정 2024-02-12 오후 5:15:56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
지난해 11월 15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지게차 화재 진압 당시 장우영 소방관(사진 오른쪽) 모습. 사진=장우영 소방관 제공.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지난해 6월 5일. 초여름 대지에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던 오후 7시께 경남 밀양소방서에 구조 출동 벨이 울렸다. 새끼 고양이가 차량 엔진룸에 갇혀 있으니 구조해 달라는 내용의 신고였다.

밀양소방서 장우영(37) 소방관은 ‘단순 동물 구조 출동이구나’ 싶어 평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펌프차에 올랐다. 하지만 장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해 보니 상황이 간단치 만은 않았다.

신고자는 길을 지나던 여고생 두 명이었다. 차 아래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고양이는 보이지 않아 신고를 했다고 했다. 여고생들은 마치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처럼 장 소방관에게 꼭 구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장 소방관은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동네 주민들도 출동한 소방차를 보고 삼삼오오 차량 주위로 몰려들었다. 장 소방관은 우선 차주의 협조를 얻어 차량 보닛(bonnet)을 열고 엔진룸을 향해 플래시를 비춰 봤다. 성인 주먹 만한 크기의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엔진룸 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그렇게 고양이는 엔진룸에 끼어 있었다. 고양이는 매우 야위었다. 그렇지만 손이 닿질 않았다. 그렇다고 방치하고 소방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장우영 소방관이 지난해 11월 29일 경남 밀양시 삼문동 유치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소방차 소개 및 소방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장우영 소방관.
단순 동물 구조라고 생각했던 장 소방관은 초여름 더위에 땀을 흘리다 문득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야 겠다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런 장 소방관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전혀 나올 기색이 없었다. 불빛을 비춰도 소리를 내어도 고양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때 몹시 배고파 보이는 고양이의 눈빛이 장 소방관의 눈에 들어왔다. 장 소방관은 같이 출동한 후배 소방관에게 고양이 간식을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후배 소방관은 소방차를 타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고양이 간식을 사왔다. 결국 간식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른 것엔 반응하지 않던 고양이가 간식으로 다가왔고, 그때를 노려 장 소방관은 좁은 틈으로 손을 겨우 집어 넣어 고양이를 무사히 구조했다. 출동 한 시간여 만의 일이었다.

그제서야 옆에서 지켜보던 여고생 신고자들과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양이를 안아 주었다. 새끼 고양이를 구조하고 보니 차량 주변에 그 고양이의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를 어미에게 보내줬다. 여고생들은 장 소방관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주민들도 ‘잘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장 소방관은 그때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그렇게 위급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사소한 출동 중 하나였지만, 신고한 사람들은 우리 소방 대원들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들으니 뜻밖의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런 작은 출동들에도 고마움을 표시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국민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직업 군인을 하다 다소 늦은 나이에 소방관으로 진로를 바꾼 장 소방관은 “실제적으로 매일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영화 속 슈퍼히어로 같은 영웅 소방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든든한 ‘아빠 같은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장우영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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