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건축, 밤에는 당구'...'PBA 무명돌풍' 박기호의 이중생활

  • 등록 2023-09-15 오전 6:10:00

    수정 2023-09-15 오전 8:47:25

프로당구 PBA 박기호. 사진=PBA
건출일과 프로당구 선수 생활을 병행히는 박기호. 사진=PBA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건축 일을 같이 하다 보니 훈련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도전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프로당구 PBA투어 ‘에스와이 PBA 챔피언십’ 남자부는 ‘스페인 3쿠션 강자’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의 통산 네 번째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정작 이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따로 있었다. 무명의 당구 선수 박기호(48)였다. 박기호는 이번 대회에서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4강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강동궁(SK렌터카), 찬 차팍(블루원리조트), 이상대(웰컴저축은행) 등 국내외 정상급 선수들을 잇달아 제쳤다.

모리 유스케(일본)와 4강전에서도 박기호는 승리를 눈앞에 뒀다. 4세트까지 세트스코어 3-1로 앞선 상황이었다. 한 세트만 더 이기면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5세트 역시 10-6으로 리드했다. 하지만 모리에게 추격을 허용하면서 14-15로 세트를 내줬고 6, 7세트까지 지면서 돌풍을 마무리했다.

박기호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그전까지는 욕심이 없었는데 결승에 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욕심이 생기더라”며 “방심하는 마음이 들었고 경기가 안 풀리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솔직히 강동궁 같은 대선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조차 못 했다”며 “운이 많이 따른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4강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박기호에게는 기적이었다. 박기호는 당구계에서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당구를 우연히 접한 뒤 30년 동안 당구 동호인으로 활동했다. 동호인 당구에선 우승을 여러 차례 했다. 본인도 큰 욕심 없이 동호인 활동에 만족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동호인 대회가 한꺼번에 중단됐다. 누구보다 당구의 진심인 박기호는 고민했다. 그러던 중 프로당구 PBA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계속 대회를 열었다. 당구를 계속 치고 싶은 마음에 2021년 트라이아웃에 도전했고 3부리그인 챌린지투어에 데뷔했다. 곧바로 4개 투어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승승장구하며 최종 순위 2위에 올라 1부 투어로 직행했다.

1부 투어의 벽은 높았다. 이번 대회 전까지 한 차례 16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지난 시즌 95위에 그쳐 강등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큐스쿨에서 14위를 차지해 극적으로 1부에 잔류했다. 이번 대회에서 4강 진출로 1부에서 꾸준히 활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사실 박기호는 본업이 따로 있다.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기술자다. 미장, 방수 등 업무를 담당한다. 집은 경기도 안산이지만 건설 현장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간다. 이번 대회에도 건설 일을 잠시 미루고 대회에 참가했고 대회가 끝나자 곧바로 현장으로 내려갔다.

현실적으로 건설 일과 프로당구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박기호는 “다른 프로선수에 비해 훈련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나는 당구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다”며 “오히려 잃을게 없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치려고 하다 보니 그게 더 잘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박기호는 고된 작업을 마치고 몸이 천근만근일 때도 당구 큐를 내려놓지 않는다. 일 때문에 지방에 있을 때는 가까운 동네 당구장을 찾아 한두 시간이라도 연습을 진행한다. 다만 직업 특성상 팔과 어깨에 힘을 쓰는 일이 많다 보니 힘 조절 등 감각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한다. 박기호는 “대회가 임박했을 때는 4~5일 정도 벼락치기로 바짝 연습해서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4강 진출은 박기호의 당구인생에 큰 변화를 줬다. 박기호는 그동안 한 번도 누군가에게 정식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냥 당구장에서 많이 쳐보면서 혼자 기술을 익히고 감각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박기호는 “그동안은 혼자 하다 보니 내가 칠 수 있는 공이라고 해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었다”며 “이제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야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1975년생으로 50을 바라보는 박기호는 마치 처음 당구를 배우는 사람처럼 설레는 마음이다. 그는 “내 인생에 한 번은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한번 계속 올라가 볼 생각이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준비해 우승까지 꼭 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한 뒤 껄껄 웃었다.

박기호. 사진=P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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