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 0시간노동'·日 '프리터족'…하루벌어 하루사는 인스턴트 노동 확산

한국서는 배달앱·재능공유 플랫폼 중심으로 확산
英·日 등 순기능 극대화·역기능 최소화 노동개혁 추진
  • 등록 2019-03-19 오전 5:00:00

    수정 2019-03-19 오전 10:38:20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단시간근로·고용불안으로 상징되는 노동의 ‘인스턴트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고용유연성은 유지하면서도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도 배달앱과 재능공유 앱 등을 중심으로 노동을 중개하는 플랫폼이 다수 출현하면서 새로운 근로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사회안전망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英·日 등 순기능 극대화·역기능 최소화 노동개혁

영국은 ‘0시간 계약(zero hour contract)’ 노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국의 0시간 계약은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을 말한다.

이들은 인력중개 플랫폼에 등록한 뒤 일이 있을 때만 연락을 받고 출근한다. 일이 많을 땐 밤새워 일하기도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아예 쉬는 일종의 ‘5분 대기조’다. 근로조건이 파트타임 근로자보다 못한 탓에 노예계약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0시간 계약 노동자들은 영국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한 2011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0시간 노동자는 2012년 4분기 25만명에서 2013년 4분기엔 58만6000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현재는 약 100만~110만명으로 추정된다. 0시간 노동자는 사업자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형태여서 비정규직 보호대상이 아니다.

0시간 근로가 늘어난데는 최저임금 인상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0월 영국 내 0시간 계약자 2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0시간 계약을 늘린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 충격 완화를 꼽았다. 영국은 작년 초 25세 이상 노동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7.83파운드(원화기준·1만1810원)로 인상했다. 지난 2012년 시간당 6.19파운드(9340원)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0시간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최저임금 혹은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응답자 중 44%가 좀 더 오랜 시간 일하거나 정규직을 원한다고 답했다. 30%는 취업 기회가 없어 0시간 계약조건이라도 일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0시간 노동형태가 확산하면서 노동시장의 고용환경 악화를 우려한 영국정부는 지난해 12월엔 플랫폼 노동자 권리를 보장·강화하는 내용의 ‘굿워크플랜’을 발표했다. 유연한 근무형태는 유지하되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영국정부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를 채용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독립사업자가 아닌 파트타임 근로자로 간주하기로 했다. 또 기업들에게 복지부담금도 부과하는 등 고용 책임을 확대했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일하는 방식 개혁’ 법률을 제정했다. 1947년 이후 가장 중요한 노동개혁이라고 평가받는 이 법에는 질 낮은 일자리 확산으로 인한 고용환경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이 포함됐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의 최저임금과 법정 노동시간(하루 8시간) 보장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다. 미국은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공정노동기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행정 해석을 변경했다.

테리사 메이(왼쪽) 영국 총리가 지난 2017년 7월 11일 영국왕립예술협회(RSA)에서 최근의 고용·노동 관행 변화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경제전문가 매튜 테일러(오른쪽)가 “기술발전이 반드시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53건의 노동정책 권고안(테일러 보고서·Taylor Review)을 영국 정부에 제시했다. 테일러는 보고서에서 현행 법률 및 제도가 0시간 계약 등 긱 경제 고용형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AFP)
한국서는 배달앱·재능공유 플랫폼 중심으로 확산

한국은 상대적으로 아직 플랫폼 노동자 비중이 크지 않지만 배달의민족, 쿠팡플렉스 등과 같은 온디맨드(주문형) 서비스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재능공유 플랫폼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 체계로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개념의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틀에서 사실상 소외돼 있다”면서 “새로운 고용형태로 봐야할 것인지, 노동자성을 인정할 것인지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존 공장제 시대의 고용·산재보험을 넘어, 소득 실태·작업 내용 등을 고려해 알맞은 사회안전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한국 사회 전체 사회안전망 체계 재정립과도 맞물려 있어 단기간에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디지털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전성이 약화할 수 밖에 없어서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 지속성과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최소한의 생계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 유지가 가능한 것도 그런 정책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 정책도 방향은 일치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은 플랫폼 경제·고도화 경제 시대에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또 고소득 계층의 부를 어떻게 복지로 잘 배분할 것인지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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