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땅 짚고 헤엄치기의 종언

  • 등록 2014-07-16 오전 7:00:00

    수정 2014-08-01 오전 11:12:55

[유재훈 예탁결제원 사장]1602년 동인도회사에서 탄생된 유가증권은 재산권을 균등하게 분할할 수 있고 가지고 다니기 용이한 점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런데 1800년대 후반부터 그 발행·거래 규모가 대폭 증가하게 되자 증권의 실물이동이 없는 장부기재를 유가증권의 소지 편의성으로 서서히 대체하면서 중앙예탁·부동화·무권화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예탁결제제도로 발전했다.

▲유재훈 예탁결제원 사장
국내 증권시장은 1960년대까지는 주식의 신규발행이 거의 없고 증권 유통도 실제 인수·인도 비용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아 사실상 차익거래 만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장과 같았다. 이에 1974년 증권거래법은 대체결제라는 새로운 법기술을 도입하고 대체결제회사를 설치해 증권의 발행·유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했다.

그러나 당시 예탁비율은 주식 62%, 채권 33%에 그쳐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다. 결국 1994년 증권거래법은 대체결제회사 대신 중앙예탁결제기관을 특수법인으로 설립, 예탁결제서비스 독점권을 부여하고 시장참가자에게 그 이용을 강제했다.

충격적 정책은 효과적이었다. 증권의 실물이동이 거의 사라지고 그 발행도 최소화돼 증권거래 비용과 위험이 크게 감소했다. 증권대차와 레포 같은 선진제도 도입과 펀드넷 같은 혁신적 시스템 개발 등에 의해 자본시장은 고도화됐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새로운 금융환경은 지금까지의 특허주의·강제주의 모델의 성공을 계속 보장해 주지 않는다. 거래소는 물론 예탁결제기관과 청산기관도 특수하고 엄숙한 기관에서 하나의 서비스산업으로 진화중이다. 자본시장이 통합된 유럽에선 프랑스 기업이 독일 예탁결제회사를 이용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의 예탁결제회사 간 경쟁이 일반화돼 있다. 예탁결제서비스가 산업화 되지 않은 아시아에서도 해외 증권거래를 지원하는 국내 예탁결제기관 업무는 유수의 국제 예탁결제기관이 빼앗아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예탁결제원이 법정설립기관의 성격을 유지함에 따라 국제 경쟁력 및 수익 창출에 한계를 보이고 있고, 경영상의 도덕적 해이가 빚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주식거래 의존형 사업구조로는 핵심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리스크 관리에 필요한 자본여력을 확충하기가 어렵고, 예탁결제산업의 개방 없이 개도국 등에 개방을 요구할 명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자본시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예탁결제서비스 운영체제를 국제규범에 맞게 개조해야 한다. 예탁결제기관을 특수법인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법적 독점을 폐지해 국내·외 경쟁 환경 속에서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고 경영상 비효율을 제거해야 한다. 금융인프라로서의 서비스 공공성, 과도한 이익추구 방지 등은 일반적 금융감독과 가격규제, 그리고 이용자와 주주 중시 지배구조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폴란드 외에는 예탁결제기관을 정부기관 방식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 현재 입법과정에 있는 전자증권제도에 관한 법률안은 복수 사업자를 전자등록기관으로 허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성숙한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누구에게도 법적 독점을 허용할 이유가 없다. 예탁결제서비스도 이용자에게 봉사할 수 있는 유인을 법적 독점 대신 시장 압력에서 찾아야 할 때다. 땅 짚고 헤엄치던 시절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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