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전장 밖 전쟁 이야기

국립극단 신작 연극 '몬순'
가상 국가 타트 둘러싼 3가지 에피소드
연극의 맛 살린 극 전개로 전쟁 의미 되새겨
연출의 묘미·개성 살린 배우 열연 인상적
  • 등록 2023-04-27 오전 5:46:00

    수정 2023-04-27 오전 5:46: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처음 벌어졌을 때, 21세기에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러시아의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지만,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전쟁을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국립극단 연극 ‘몬순’의 한 장면. (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신작 ‘몬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전쟁에 대한 연극이지만, 전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실제 공연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 또한 전쟁과 무관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극장 밖을 나설 때 관객은 깨닫게 된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품은 전쟁 중인 가상의 국가 타트를 중심으로 한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무기회사 직원인 차미와 그의 아들 굴의 집에서 홈스테이하는 타트 출신 네이지, ‘전쟁’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졸업 전시를 위해 친구 이삭과 타츠에서 온 교환학생 코우쉬코지에게 조언을 구하는 대학원생 새벽, 타트 출신 무용수 문과 유치원에서 일하는 동성 연인 리오, 그리고 이들의 친구인 홀키의 이야기다.

‘몬순’의 가장 큰 묘미는 연극에서 맛볼 수 있는 촘촘한 이야기 구조다.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세 개의 에피소드는 극이 전개되면서 서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하나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네이지가 고향에 남아 있던 동생이 군인들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전화를 받는 동안, 무대 한 편에서 새벽이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을 하며 이삭과 통화를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물 동선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연출의 묘미가 130분의 공연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등장인물의 개성을 잘 살린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국립극단 연극 ‘몬순’의 한 장면. (사진=국립극단)
무엇보다 ‘몬순’은 전쟁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지금 시대에 전쟁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유리 괴물’ 이야기가 그러하다. 유리 괴물은 산책할 때마다 사방으로 아주 미세하고 고운 유리 알갱이를 흩뿌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유리 입자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괴물이 지나간 주변 사람들은 살갗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쟁에 대한 비유는 ‘몬순’이다. 계절풍을 뜻하는 단어 ‘몬순’은 비를 동반한 바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극 중에서 전쟁무기를 비롯해 로켓, 게임 등을 개발하는 기업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비바람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비바람처럼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몬순’은 이를 탄탄한 이야기로 설득한다.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작가’를 통해 이소연 작가가 집필한 희곡을 진해정 연출이 무대화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생중계 영상을 게임 속 한 장면처럼 보는 사람들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이소연 작가는 “전쟁을 기준으로 지금 내가 어디쯤 위치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를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 강민재, 권은혜, 김예은, 나경호, 남재영, 송석근, 신정연, 여승희, 이주협 등이 출연한다. 오는 5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극단 연극 ‘몬순’의 한 장면. (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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