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블라인드 채용은 공정한가

  • 등록 2022-11-08 오전 6:15:00

    수정 2022-11-08 오전 6:15:00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1차 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공공부문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최근 몇 년 동안 우수 연구자 확보를 가로막았었다”며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합격자의 출신 배경이 다양해지는 등 블라인드채용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223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합격자 중 서울대·연대·고대 비중은 2016년 8%에서 2019년 5.3%, 수도권 소재 대학은 (지역인재할당제도의 영향도 있지만) 2016년 33.2%에서 2019년 29.6%로 감소한 반면 여성 합격자 비율은 2016년 34%에서 2019년 39%로 5%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은 2019년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원에 중국 국적자가 선발됐다가 불합격 처리되는 촌극까지 발생할 정도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공정 채용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출신 학교는 물론이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연구실적 논문의 ‘교신 저자’의 이름까지 삭제해서 제출토록 하는 등 분야별, 기관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제도 운영으로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강하게 제기됐다.

정부는 채용절차법을 ‘공정채용법’으로 전부 개정할 계획인데 채용 비리 근절과 함께 공정채용의 사회적 편익대비 비용을 고려해 제도 개선을 이뤄야 한다. 최악의 취업난,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경쟁 속에서 청년들에게 채용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채용상 차별 금지에 대한 법적 요건을 권고적 성격에서 처벌을 포함한 의무적 성격으로 바꾼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원자의 출신 지역, 학력, 취업경험, 성과 등을 채용과정에서 노출하지 않도록 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과하게 강조함으로써 블라인드채용이 노동시장에서 가장 배합이 잘되는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하여 주는 노동시장의 본원적 기능을 간과하고 있는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공공부문은 비정규직이 줄어들었으나 나라 전체로는 비정규직이 늘어났듯이, 5년간 정부가 민간부문에도 블라인드 채용을 독려했으나 효과가 크게 없었던 건 블라인드 채용이 가지는 구조적인 취약점 때문이다.

보완이 여전히 필요한 국가직무능력(NCS)를 제외하면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아직은 직무중심의 노동시장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자의 구체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배제하고 대학 졸업 여부, 이수 과목 등 매우 기초적인 정보에만 의존하는 채용 방식으로는 기업들로선 원하는 우수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하다. 오히려 공개되는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기업 및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들이 컴퓨터활용능력시험 등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따는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낭비도 있다. 지원자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채용기관도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 시간과 비용을 더 투입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점이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지원자의 인종, 성, 연령, 외모 등이 노출되지 않게 하는 사례는 다수 있어도 출신 학교, 전공, 학점 등이 드러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동시장에서 구인자가 요구하는 스킬(skills)과 구직자가 제공할 수 있는 스킬의 불일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정채용을 위한 최종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블라인드채용, 채용철차의 공정성 제고가 실제로 학력 등 스펙위주 채용 관행을 어느 정도 완화시켰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필요하다.

학벌중심사회를 채용제도로만으로 바꿀 수는 없다. 박근혜정부 등에서 추진했듯 노동시장 전체를 능력과 역량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이 학벌 등은 참고사항으로만 여긴다는 점을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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