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휘발유·소주살 때…내 지갑서 빠져나가는 '스텔스 세금'

부가가치세·판매세 같은
간접세나 신설세금에 부과
20개들이 담배 한갑 4500원
세금이 3323원…무려 74%
휘발유 61%, 소주 53%가 세금
  • 등록 2017-09-18 오전 6:00:00

    수정 2017-09-18 오전 7:24:02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40대 회사원 김봉연 씨는 하루에 담배 두 갑씩 태우는 ‘헤비 스모커’다. 2년 전 담뱃값 인상에도 담배를 끊지 않았던 김씨가 최근 정치권의 담뱃값 논란 후 담배를 끊기로 했다. 그동안 낸 세금 때문이다. 김씨는 “담배값의 74%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둬간 세금이라는 설명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정치권이 담뱃값으로 시끄러웠다. 담뱃값에 포함된 담뱃세는 대표적인 간접세로 원가보다 세금이 더 많다. 국민이 소비하고 있는 술과 담배, 휘발유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간접세, 즉 물건값에 포함된 세금이 원가보다 많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세금 비중이 가장 높은 건 담배다. 20개들이 한 갑 가격 4500원을 보면 유통 마진을 포함한 제조원가는 1177원인데 담배소비세 1007원을 포함해 세금이 3323원이다. 한 갑 가격의 74% 정도가 세금이다.

담배값에 붙은 주요 세금을 살펴보면 국세(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지방세(담배소비세, 지방소비세), 부담금(건강증진 부담금, 폐기물 부담금) 등이다. 지난 2015년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이 비중이 12% 포인트나 올랐다. 2015~2016년 2년간 정부는 담뱃값인상으로 9조원의 세수를 더 거둬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당신의 주머니를 턴다”

이처럼 내 주머니에서 슬쩍 빠져나가는 세금이 있다. 이른바 ‘스텔스 세금(stealth tax)’이 그것이다.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고 적진에 침투하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납세자가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한 세금이 스텔스 세금이다.

지난 1990년대 후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스텔스 세금으로 세수를 충당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처음 이 용어가 등장했다. 이후 각국이 ‘스텔스 세금’ 짜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스텔스 세금은 소득세, 법인세와 같은 직접세보다 부가가치세나 판매세 같은 간접세 혹은 신설세금에 부과되고 있다. 담배만큼 세금 때문에 원성을 사는 게 휘발유다. 리터당 기준으로 세금 비중이 61%나 된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경유세도 세금 비중만 55%에 이른다. 특히 세금 대부분은 기름값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내는 정액제여서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국민은 체감하지 못한다. 국제유가가 떨어졌는데 왜 기름값이 안 떨어지느냐고 불만을 터뜨려 봤자 헛수고라는 의미다.

술에 붙는 세금도 마찬가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소주 1병의 출고가 1015원인데 원가는 476원이다. 나머지 53%는 세금이다. 세금으로 마시는 소주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간접세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떨어지고 세금의 비효율적인 징수가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자료 : 우리금융연구소
정치 논리 숨어 있는 간접세 인상

문재인 정부가 올해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에 대한 세율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힌 가운데 부가가치세, 주세 등 조세저항이 적은 간접세를 세수확보의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스텔스 세금은 주로 생필품에 세금을 붙이기 때문에 경기에 민감하지 않고 징수 비용도 낮아 탈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정부로서는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인 셈이다.

간접세는 소득이 높건 적건 똑같이 세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처럼 조세저항이 적고 징수하기 쉬운 간접세를 세수확보의 대안으로 검토하자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예를 들어 한 달 소득이 200만원인 사람이 한 달에 생활용품, 경비, 식대 등으로 부담한 부가세, 주세, 유류세 등의 간접세가 총 20만원이었다면 소득의 10%를 간접세로 부담한 셈이다. 하지만 한 달 소득이 2000만원인 사람은 0.1%만 부담한다. 따라서 간접세가 오르면 저소득 서민이 받는 타격은 고소득층보다 크다.

전문가들은 간접세 인상에는 정치적인 논리가 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중산층에 대놓고 세금을 더 물리기는 어려우니 곳곳에 숨은 세금을 신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곤두박질하는 바람에 세수는 줄어든 반면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에 씀씀이는 늘어나면서 나라 살림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각종 세금을 신설하고 있지만 결국 세수를 늘리기 위한 고육책이란 얘기다.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세 전문가이자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경제학 교수인 스티븐 매튜스는 “간접세엔 정치 논리가 숨어 있다”며 “유권자에게 인기 없는 소득세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조세재정특별위원회를 연내에 구성해 소득세, 부동산 보유세, 법인세, 경유세, 부가가치세 등의 증세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조세특위는 내년 세제개편 로드맵을 만들어 청와대와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소득자·대기업 다음으로 보편적 증세를 해야 한다”며 “부가세는 정치·시장에 주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공론화를 하면서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 : 우리금융연구소
세계 각국도 스텔스 세금 골몰

지난 2010년 핀란드는 사탕과 탄산음료에 부과하는 세금을 부활했다. 덴마크도 담배와 지방성분이 많은 음식에 세금을 올렸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북아일랜드는 애완견 등록비를 10배 올렸다.

세계 각국이 국민 눈에 잘 안 띄는 ‘스텔스 세금’ 짜내기에 골몰하는 것은 돈 쓸 곳은 많은데 곳간을 메울 방법은 마땅치 않아서다.

신설 세금이 소득세·법인세 같은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판매세 같은 간접세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간접세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부가가치세 평균 세율은 2008년 19.5%에서 지난해 말 22.0%로 올라갔다.

김선택 한국 납세자연맹 회장은 “조세저항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정부 부처들은 조세 저항을 피하고자 ‘보이지 않는 세금’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며 “ 자동차 세금 40조, 담뱃세 12조, 카지노·복권세금 6조, 주세 5조 등 4가지 항목에 63조(총세수의 20%)를 징수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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