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성장통 앓는 사모펀드

  • 등록 2019-10-14 오전 5:00:00

    수정 2019-10-14 오전 10:13:04

[이데일리 권소현 증권시장부장] 인도에 대한 책을 읽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퀴즈 하나. 신분제인 ‘카스트’ 문화가 아직 존재하는 인도에서 “당신의 하녀는 아직도 세 살배기 아기에게 모유를 먹인다. 당신은 도움을 주려고 당신의 아이들이 우유를 마실 때마다 그 아기에게도 우유 한잔을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체중을 얻기는커녕 갈수록 야위어 가고 계속 설사를 한다. 이유가 뭘까” 답은 “다양한 세균에 대한 면역을 키워온 인도 아이들에게는 서양인이 아무 문제 없이 마시는 포장 우유가 소화하기 너무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였다.

면역력. 아이가 어릴수록 면역력 키우기는 아주 중요한 과제다. 태어날 때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력은 생후 100일이면 소진된다. 실제 아이는 백일 상을 받은 지 얼마 안되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해대더니 그 뒤로는 툭하면 감기에 걸리고 수족구나 구내염 같은 전염병은 그냥 지나가는 법 없이 매번 앓았다. 그러다 5살 즈음이 되니 감기 걸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고 전염병을 피해 가기도 한다. 영아 때 수없이 아프면서 면역력이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최근 일련의 사모펀드 악재를 보면 비슷한 느낌이다. 4년 전 정부가 사모펀드 활성화에 나선 후 급성장해온 만큼 이제 아플 때도 된 게 아닌가 싶다. 2015년 말 200조원 수준이었던 사모펀드 설정액은 현재 398조원으로 두 배 늘었다. 같은 기간 공모펀드 설정액이 12%가량 늘어난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어느새 공모펀드 설정액까지 추월했다.

그런데 잇달아 원금손실이나 환매중단과 같은 문제가 터지니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사모펀드 시장 성장을 독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저금리 기조에 투자자들이 만족할만한 금융상품을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했던 2015년보다 지금 금리는 더 낮다.

사모펀드로 돈이 몰린 것도 정기예금 금리가 1%대에 불과한데 6~7%의 수익률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스크를 감수한 만큼 수익률도 높았던 것인데 지금 리스크가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하면서 펀드런(대량환매)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한다면 펀드 산업뿐 아니라 중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단시간 내에 거래량 기준 세계 1위로 성장했던 파생상품 시장이 정부의 규제로 쪼그라든 경험이 있다. 물론 투자자 보호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그만큼 기회를 잃은 투자자도 있다.

다시 아이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열감기에 걸려 체온이 40도를 오르내리면 2시간마다 해열제 교차투약을 해가면서 열을 재보고 그래도 열이 안 떨어지면 새벽 2시, 3시에 아이 안고 응급실로 뛰어가기를 여러 번. 신기하게 그렇게 한번 아프면 아이는 훌쩍 큰 듯한 느낌이다. 더 의젓해지고 성숙해진다. 아이가 아픈 건 어찌 보면 커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아이가 아플 만한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이불 밖은 위험해”라며 아예 바깥활동을 통제하거나 공공장소를 찾지 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환경에 노출해 면역력을 키우고 좀 더 단단한 아이로 키우는 게 나을 수 있다.

사고가 터지면 강화하고, 그러다 펀드산업이 위축되면 다시 규제를 풀고 하는 식의 냉온탕 정책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운용사와 판매사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상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만 판매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투자자보호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번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로 지불한 수업료가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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