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육지속 외딴 섬 갇힌 '단종'…영월 곳곳 애달픈 恨 '절절'

영월 곳곳에 깃든 단종의 흔적을 따라가다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임금 '단종'
창살없는 감옥같은 유배지 '청령포'
단종의 넋을 기리는 '장릉'
  • 등록 2019-01-25 오전 6:00:00

    수정 2019-01-25 오전 8:17:50

단종이 유배생활을 한 청령포 송림(松林)을 걷고 있는 여행객. 청렴포는 동남북 삼면이 남한강 지류인 서강의 강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66봉의 험한 산줄기 절벽에 막혀 있어 ‘창살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영월=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강원도 영월은 여행자에게 ‘보물’ 같은 고장이다. 어라연과 청령포, 선돌, 한반도지형까지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만 4곳에 달한다. 여기에 동강과 서강, 그리고 천연동굴까지. 이뿐인가. 아름다운 별빛이 쏟아지는 천문대도 있다. 그윽한 풍류의 정자도, 28곳에 달하는 뜻밖의 박물관도 영월 여행을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에 구름처럼 살다가 떠나간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까지. 역사와 문화, 자연까지 품은 고장이 바로 영월이다. 그중 단연 최고는 단종의 애환이 깃든 유적지다.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당한 뒤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장릉에 묻히기까지, 영월 곳곳에는 단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단종의 자취를 따라가면 슬픈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청령포 소나무숲에 들어선 ‘단종어소’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임금 ‘단종’

단종이 청렴포로 향하는 길에 신선처럼 보여 ‘신선암’으로 불렸다는 ‘선돌’
영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바로 비운의 왕 ‘단종’이다. 단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여덟 살에 세손에 올랐고, 열살에 세자로 책봉됐다.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단종은 열두 살 나이에 보위를 물려받았다. 그것도 잠시.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멀고 먼 영월 땅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어린 나이의 단종에게는 멀고 먼 길이었다. 창덕궁 대조전에서 유배교서를 받은 후 1456년 음력 6월 22일 돈화문을 나섰다. 한강나루에서 남한강 뱃길로 양주, 광주, 양평, 여주, 원주를 거쳐 닷새 만에 영월 땅 주천에 당도했다. 단종은 배에서 내려 이곳 우물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갈증을 풀었다. 이 우물이 바로 ‘어음정’이다.

공수원 주막에서 유배길 마지막 밤을 보낸 단종은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섰다. 주천면 주천리에서 한반도면 신천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군등치’도 이때 생긴 이름이다.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이 고갯길을 넘었다해서 이름 붙었다. 군등치를 넘은 단종은 광전리 중심 마을인 여촌(麗村) 동남쪽에 있는 고개인 ‘배일치’에 올랐다. 이 길에서 단종은 서쪽을 향해 큰절을 했다. 자신을 위해 죽어간 사육신을 향해서였다. 다시 단종은 북쌍리의 점말과 갈골, 옥녀봉을 거쳐 선돌에 이르렀다. 충북 제천에서 영월로 이어지는 길목인 선돌은 방정리 날골마을과 남애마을 서강 강변에 서 있는 거대한 바위다.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갠 듯한 형상이다. 그 높이만 70m에 이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단종이 청렴포로 향하는 길에 선돌 근방에서 쉬어 갔는데 이때 선돌이 마치 신선처럼 보여 ‘선돌’ 혹은 ‘신선암’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한 장수가 적과 싸우다 패배해 자라바위에 투신했는데 이후 그가 선돌로 환생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이 선돌에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도 있다.

청렴포 선착장. 동·남·북 3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언뜻 섬처럼 보인다.


◇ 외딴 섬 같은 천혜의 유배지, 청령포

단종은 유배지 ‘청렴포’에 도착했다. 유배길에 오른 지 8일만이다.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자리했다. 동·남·북 3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어 언뜻 섬처럼 보인다. 창살없는 감옥인 셈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청령포까지 3분 남짓 걸린다. 배에서 내려 빽빽한 소나무 숲에 들어서면 소나무 사이로 행랑채가 보인다. 궁녀와 관노가 생활한 공간이다. 그 옆 육단대처럼 큰 기와집이 ‘단종어소’다. 사실 지금의 단종어소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1996년 이곳에 큰 홍수가 나서 ‘진짜’ 단종어소가 떠내려가서다.

단종어소 앞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 글자가 새겨진 ‘단묘유지비’가 있다. 단종이 기거했던 옛 집터가 있었음을 표시하는 비다. 본래 있던 건물이 소실되자 영조 39년(1763) 원주관아에서 어소가 있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단종어소에는 눈길을 끄는 특이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담장 밖에서 단정어소를 향해 절을 하듯 굽은 모양새가 눈길을 끈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묻은 엄홍도의 충절을 기려 ‘엄홍도소나무’라고 불린다.

단종어소에 절을 하듯 굽은 ‘엄홍도소나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릉에 묻은 엄홍도의 충절을 기려 ‘엄홍도소나무’라고 불린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본 증인도 있다. 수령 600년이 넘은 ‘관음송’이다. 키가 30m에 달하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크다. 아랫부분에서 두 줄기가 하늘로 높이 뻗어 오른 모습이 품위 있고 자태가 아름답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볼 관(觀)’, ‘소리 음(音)’ 자를 쓴다.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시름을 달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잊지 말아야 할 볼거리도 있다.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며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과 단종이 유배생활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자주 오르던 ‘노산대’, 그리고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은 왕이 계시는 곳이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쓰인 ‘청령포금표비’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그 자리에 있다.

왕이 계시는 곳이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쓰인 ‘청령포금표비’


◇슬픈 역사가 강물처럼 흐르는 ‘장릉’

1457년 여름 청령포에 큰 홍수가 났다. 이후 단종은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조선 초기 영월 동헌 터에 지은 객사다. 넓은 마당을 두고 큰 건물 세 채가 동서로 나란히 붙어 있다. 해방 전에는 영월군청이, 그 뒤에는 영월중학교가 들어서기도 했다. 지금은 보덕사 포교당으로 쓰이고 있다. 영월읍 중앙로에서 동강 1교 방향으로 약 700m 지점에 있다. 담장 앞으로 도로가 나고 상가 건물이 바짝 들어서서 자칫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십상.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다. 한적하다 못해 쓸쓸함이 가득한 것이 단종의 불행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단종은 이곳에서 한 많은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때가 1457년 10월 24일이었다.

단종의 묘가 모셔져 있는 ‘장릉’ 가는 길


관풍헌 마당 앞 좌측에는 2층 누각인 자규루가 있다. 세종 때 영월군수였던 신권근이 세운 누각으로 본래 이름은 ‘매죽루’였다. 그러다 단종이 관풍헌으로 옮겨오면서 누각에 올라 자신의 한을 담은 ‘자규사’ 라는 시를 짓고 나서 ‘자규루’라고 불린다. 단종은 죽어서도 편안할 수 없었다.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이가 없었다. 세조가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려서다. 그러던 중 영월 지방의 호장이었던 엄홍도가 목숨을 걸고 동강에 나가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싣고 동을지산 능선에 노루가 잠자던 자리에 암매장했다. 이후 숙종 때 이르러서야 단종이 다시 왕이었음을 인정받게 되었고, 그의 무덤을 장릉이라 했다.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했던 단종이 숙종에 의해 241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장릉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무덤으로 오르는 길에도 예외 없이 소나무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신기한 것은 소나무가 예를 갖춰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 있는 모양이 많다는 사실. 우연이겠지만 비통한 죽음을 맞은 단종의 넋을 기리는 듯하다.

단종의 묘가 모셔져있는 장릉에는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를 기린 ‘엄홍도 장려각’이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원주 인근의 만종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다시 제천IC로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제천·영월 표지판을 따라가다가 제천 못미쳐서 영월로 가는 도로를 갈아타면 된다. 서울에서 영월까지는 승용차로 넉넉잡아 3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먹을곳= 영월읍에 있는 벌떼식당은 직접 만든 손두부와 손만두국이 유명하다. 산초두부는 산초유를 사용해 담백하지만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영월읍의 평양냉면은 영월 주민들도 많이 가는 한우 생고기와 평양냉면 전문점이다. 영월에는 동강에서 잡은 다슬기로 끓여낸 해장국이 유명하다. ‘성호식당’과 ‘동강다슬기’가 손꼽히는 곳이다. 해장국뿐만 아니라 다슬기 비빔밥과 다슬기 순두부도 내놓는다.

△잠잘곳= 영월에는 펜션 등 숙소가 여럿 있다. 대부분 동강을 끼고 있다. 무릉도원면 소재지에서 법흥사로 이어지는 법흥계곡에는 펜션이 줄지어 있다. 최근에 영월읍에 생긴 ‘호텔 어라연’은 깨끗한 시설과 낮은 가격으로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벌떼식당의 손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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