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고 놀지마' 전 세계 물류 마비시킨 예멘 반군 지도자

[글로벌스트롱맨]후티 지도자 압델 말렉 알 후티
반미·반이스라엘 앞세워 종교단체서 군사세력화
홍해 봉쇄 통해 존재감 과시…미국도 대응 고심
  • 등록 2023-12-23 오전 11:00:00

    수정 2024-01-04 오후 2:23:34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국제 무역의 핵심 길목인 홍해 항로가 꽉 막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 700만배럴에 이르는 석유가 오가는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지만 이제 대부분의 선사가 홍해 항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 등으로 멀리 돌아가고 있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40%에 이르는 선박에서 지연이 발생했다. 운임은 물론 국제 유가도 한 달 새 10% 가까이 올랐다.

지난달 예멘 수도 사나의 한 모스크에서 군인들이 예멘 반군 후티의 지도자 압델 말렉 알 후티의 연설을 보고 있다.(사진=AFP)


이 같은 혼란을 빚은 ‘빌런’은 예멘 후티 반군이다. 인도양과 수에즈운하, 지중해를 잇는 요충지인 아덴만을 장악한 후티는 지난달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무관한 선박까지 후티 공격을 받았다. 미국은 다국적 함대를 꾸려 견제에 나섰지만 후티는 개의치 않고 있다. 후티 지도자인 압델 말렉 알 후티는 지난 20일 자신들이 운영하는 알마시라TV에서 “미국이 우리를 겨냥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우를 범한다면 그들을 직접 겨냥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압델 말렉 알 후티(사진=AFP)


“이스라엘에 죽음을” 구호 앞세워 후티 지휘

후티의 모태는 1994년 북예멘에서 조직된 ‘믿는 청년들’이다. 믿는 청년들은 이슬람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가 중심이 돼 조직됐다. 자이드파는 한때 북예멘왕국의 주류였으나 북예멘왕국이 수니파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됐다. 1970~1990년대 예멘 북쪽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으로 와하비즘(수니파 근본주의)가 예멘으로 유입되자 자이드파 불만은 더욱 커졌다. 이런 자이드파 청년들을 믿는 청년들이란 이름으로 결속한 게 압델 말렉의 형, 후세인 알 후티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에멘의 역사는 크게 바뀐다. 후세인은 미국과 당시 예멘을 통치하던 친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2004년 후세인이 정부군에 사살되자 믿는 청년들은 후세인의 성(姓)을 딴 군사조직, 후티로 변모한다.

이때 후세인을 대신해 후티의 지휘관을 맡은 사람이 25살이던 압델 말렉이다. 압델 말렉은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이란 구호를 앞세워 후티를 이끌었다. 압델 말렉과 후티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는 뿌리가 깊은 셈이다.

2012년 ‘아랍의 봄’(아랍권의 연쇄적 민주화)으로 살레 정권이 무너지고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이 됐다. 하디는 예멘을 6개 자치주(州)로 나눠진 연방국가로 재편하려고 했다. 후티는 이를 자신들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로 해석하고 반발했다. 2014년 7월 하디 정부가 연료 보조금을 폐지해 민심이 들끓자 후티는 8월 군사행동을 개시, 한 달 만에 수도 사나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36살 압델 말렉은 예멘의 심장을 차지한 권력자가 됐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사진으로 예멘 후티 반군의 헬기가 홍해 지역에서 자동차운반선인 갤럭시 리더호에 접근하는 모습 (사진=로이터)


이란과 손 잡고 사우디 공격 막아내…예멘 인구 70~80% 통제

턱밑에 이란과 밀접한 시아파 세력이 들어서는 것에 부담을 느낀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연합군은 후티를 맹공격했으나 후티는 연합군의 실책과 이란 지원에 힘입어 이를 격퇴했다. 사우디와 냉랭한 사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후티의 테러지정 지정을 해제한 것도 후티에 힘을 실어줬다. 현재는 예멘 인구의 70~80%가 후티 통제하에 있다.

올 들어 사우디도 후티와 평화 협상을 공식화했다. 그간 이렇다 할 전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가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외적 안정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후티가 내전을 마무리 짓는 조건으로 재정 지원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가까운 싸움이 압델 말렉과 후티의 실질적인 승리로 마무리됐다는 뜻이다.

이 같은 성과로 인해 압델 말렉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압델 말렉은 후티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같이 강력한 군사 세력으로 키우려 한다. 마이클 나이츠 미국 워싱턴근동연구소 연구원은 예멘의 인구와 자원이 레바논보다 더 많다는 점에서 후티가 헤즈볼라보다 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후티가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란을 매개로 하마스와 반미·반유대주의 연합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압델 말렉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직후 “우리는 저항의 축에 있는 형제들과 완벽한 협력을 하고 있다”며 하마스·이란과의 연대를 과시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팔레스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이미지를 구축해 예멘 국내외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으로서도 후티는 만만한 적이 아니다. 수년 동안 사우디 등과 전쟁하며 전투 경험을 쌓았을 뿐 아니라 사정거리가 2500㎞에 이르는 중거리미사일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다시 정세가 불안해질까 봐 미국 등의 요청에도 후티와 맞서길 주저하고 있다. 미국 역시 후티에 대응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 반해 큰 소득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고심에 빠졌다.

예언자 무함마드 탄생일 기념식에서 후티 지지자가 압델 말렉 알 후티의 사진을 들고 있다.(사진=AFP)


정치 권력 차지한 압델 말렉, 종교적 권위까지 눈독

압델 말렉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을 자처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후티에선 압덱 말렉을 ‘(신앙적) 지도력의 상징’(Alam al-Huda)이란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정치적 권력에 더해 종교적 권위까지 확립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엔은 2015~2022년에만 예멘에서 37만명 넘는 사람이 전쟁과 기아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하던 예멘은 아랍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다. 압델 말렉과 후티 역시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동 전문 저널리스트 압둘아지즈 킬라니는 미국 싱크탱크 걸프국제포럼 기고에서 “에멘이 외부분쟁에 개입하면 국내 평화 프로세스가 지연될 뿐 아니라 더 큰 불행과 기아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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