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선 외면 南선 모르는…낯선 거장을 만나다

고려인 화가 '변월룡' 회고전
중국 연해주 출신…러시아서 활동
러 최고 미술학교서 한인 최초 교수
북한에 리얼리즘 전수, 北 미술 초석
끊어진 한국현대미술 연결고리될 듯
김용준·최승희 등 월북예술가 초상
한국전쟁 포로·50년대 평양 풍경 등
작품 200여점·자료 70...
  • 등록 2016-03-15 오전 6:16:00

    수정 2016-03-15 오전 6:16:00

변월룡이 1954년에 그린 ‘무용가 최승희’. 한복을 입고 붉은 부채를 든 1950년대 최승희(1911∼1969)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당시 변월룡은 북한에 있는 화가 김용준, 무용가 최승희 등 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며 북한미술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김자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를 위해 대대적으로 준비한 전시가 있다.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이 그것이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미술가의 전시를 잇달아 여는 특별전이다. 오는 5월 이중섭과 10월 유영국의 전시를 기획한 가운데 그에 앞서 소개한 인물은 일반대중에겐 다소 낯선 ‘거장’ 변월룡(1916~1990)이다. 오는 5월 8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협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여는 ‘변월룡 1916~1990’ 전은 그간 한국미술사에 흔적도 없었던 한 미술가를 조명한 대형 회고전이다.

◇ 잊힌 작가 ‘변월룡’을 찾아내다

생전의 변월룡(사진=국립현대미술관).
러시아이름 펜 바를렌, 한국이름 변월룡. 러시아 연해주 출신인 고려인 화가. 하지만 변월룡에겐 ‘북한 근대미술의 토대를 만든 작가’란 대단한 수식어가 달려 있다. 변월룡은 러시아 최고 미술학교인 레핀아카데미에 한인 최초로 입학한 사람이자 그 학교에서 한인 최초로 교수로 재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러시아, 당시 소련의 주류사회에 편입했지만 한인으로서 인종차별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모국인 한국에서도 환영을 못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소련 문화부의 지시로 1953부터 1년 3개월간 북한 평양미술대학에서 리얼리즘 사조의 그림을 교수들에게 전수했다. 이때 변월룡이 가르치며 전한 소련의 미술 학과제도가 북한 근대미술의 근간이 됐다. 이후 소련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북한으로 가려던 변월룡은 1956년 김일성이 소련파를 제거하면서 북한 입국의 길이 막힌다. 북한과의 관계가 끊기면서 남한에선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잊힐 듯했던 변월룡을 국내에 소개한 것은 미술평론가 문영대(56) 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유학 도중 1994년 우연히 들른 국립러시아미술관에서 변월룡의 그림을 발견하고 국내에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문씨가 처음 변월룡을 찾아낸 뒤 22년 만에 열리는 것이다. 문씨는 “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과 아이를 그린 그림을 보고 절대 외국인의 작품이 아닐 것이란 생각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변월룡의 모든 것을 알게 됐다”며 “화가인 아들 펜 세르게이를 찾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살펴봤고 그 인연이 이번 전시로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한국에서 변월룡의 전시를 열기 위해 2004년 작품 200여점을 유족에게서 전달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을 전시하기가 녹록지 않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변월룡의 ‘자화상’(1963)(사진=국립현대미술관).


◇ 러시아 디아스포라 동포작가의 그림여정

이번 전시에선 변월룡이 1947년 그린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소설가 이기영·한설야, 무용가 최승희 등 월북예술가의 초상화도 대거 걸렸다. 변월룡의 초상화 시리즈는 대상의 개성과 인상을 잡아내는 뛰어난 관찰력과 화려한 색채가 특징. 덕분에 변월룡은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초상화가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초상화가라는 평가도 받는다. 전시장 한쪽에는 초상화 주인공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이번 회고전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협정 당시의 포로교환 풍경이나 그즈음 북한에 머물며 그린 폐허가 된 북한 곳곳의 일상도 볼 수 있는 희귀전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 디아스포라(이산) 동포작가의 그림 여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변월룡의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 송환’(1953)(사진=국립현대미술관).


당시 남한 작가들이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 인상파 그림에 영향을 받았다면 변월룡은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그대로 흡수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작품 대부분을 유화와 동판화 등 서양화법으로 작업하면서도 인물화와 풍경화는 전통회화 사조 그대로를 살리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로는 연해주를 수시로 드나들며 조국의 풍경에서 얻은 영감을 그림에 그대로 옮겼다. 타계 직전에는 금강산 소나무를 그렸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소재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후기 작품에선 인상주의와 모더니즘 사조를 완연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색채와 구도 등에서 꾸준한 변화를 추구했다.

드로잉과 초상화, 풍경화 등 200여점을 비롯해 아카이브 70여점을 선보인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했다. 변월룡 작품의 토대가 된 러시아 아카데미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을 모은 ‘레닌그라드 파노라마’와 더불어 ‘영혼을 담은 초상’ ‘평양기행’ ‘디아스포라의 풍경’ 등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변월룡이란 화가 자체에 먼저 주목하고 변월룡을 매개로 한국미술사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시”라며 “한국미술사의 공백기를 변월룡이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변월룡이란 낯선 작가를 소개한 것은 일본미술을 비판없이 받아들인 한국(남한) 근대미술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닌 디아스포라를 포용해 한국미술에서 새로운 선진성을 발견하자는 것”이라며 전시를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02-2022-0600.

변월룡이 1987년에 그린 ‘금강산 소나무’(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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