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기업지배구조와 강한 시스템

  • 등록 2003-01-13 오전 9:24:15

    수정 2003-01-13 오전 9:24:15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최근 미국의 기업계에선 새삼스럽게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와 관련된 논의가 일고 있다. 이는 엔론 글로벌크로싱 월드컴 등의 회계 스캔들이 미국 기업과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력이 그만큼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기업들의 회계스캔들이었기 때문이다. 엔론이 파산을 신청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엔론의 파산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한 두 마디로 정리하긴 힘들지만 기업 입장에선 가장 큰 변화가 독립적인 회계감독기구의 설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감사인이 기업경영에 아무런 견제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물이 사바네즈-옥슬리법안이며 이에 기초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산하에 회계감독기구가 설립됐다. 미국 최대의 민간경제연구소인 컨퍼런스보드는 지난 주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업들의 회계 스캔들과 관련한 여러 이슈에 대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회계스캔들 종식을 위한 몇가지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컨퍼런스보드는 이미 지난해 9월 "경영자의 인센티브"에 대해 한차례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보다 외연을 확장시켜 기업지배구조와 함께 기업의 회계와 감사기능, 기업윤리 등에 대한 이슈를 폭넓게 다루었다. 컨퍼런스보드는 전세계 61개국 2000여개의 기업들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는 민간경제연구소이며 이중 블루리본위원회는 주로 기업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패널이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인 폴 볼커,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 재무장관으로 영전한 존 스노우 전CSX 회장 등이 블루리본위원회의 위원이며 이밖에도 전 존슨앤존슨 회장, 하바드대학 비즈니스스쿨의 현직 교수 등 12명의 쟁쟁한 인물들이 참여하고 있다. 블루리본위원회가 제안한 내용은 3가지다. 첫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의장의 기능은 분리돼야 한다. 둘째, CEO와 이사회 의장은 서로 다른 사람이어야 하며 기업경영진들과는 다른 "독립 이사"들이 선임돼야 한다. 세째, 이사회가 이사회의장과 CEO를 분리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감독기구(Presiding Director)를 설립해야 한다. 물론 이같은 제안은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이며 강제력은 없다. 블루리본위원회에서 1년여에 걸쳐 논의한 결과물을 발표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그간의 논의에 참여했던 위원들은 직접 자신의 관심사와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하바드 비즈니스스쿨의 현직 교수인 린 샵 페인은 기업조직내 휘슬블로어(내부고발자)의 역할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그릇된 행위를 고발하는 휘슬블로어들은 경영진의 전횡에 대한 중요한 견제장치이지만 사실은 해고되거나 내부에서 "왕따"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내부적인 문제가 곪아터지기 이전에 그것을 알아차리고(조기경보기능),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자정기능)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예리한 인상의 여성 교수는 주장했다. 뱅가드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존 보글은 기관투자가 등 장기투자자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존 보글은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는 장기투자자라 할 지라도 오너라기 보다는 투자자로 행동한다"며 보다 책임있는 장기투자자의 역할을 주문했다. 장기투자자는 기업의 소유권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을 망각해선 안되고 기업의 경영과 정책에 대한 잠재적 영향력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 기업연금펀드의 CIO인 피터 길버트는 장기투자자들의 목소리를 기업들이 보다 잘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 얘기했다. 한 예로 장기투자자들이 이사회 멤버를 추천하는 방안이다.기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선 명백한 근거를 밝히는 등의 장치를 마련하면 보다 효율적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미국기업들의 회계스캔들이 터진 것은 기업내 식견있고 독립적인 회계감사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독립적인 위원회가 필요하며 회계위원회 자체도 지속적인 교육과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기업시스템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그것이 세계 최강의 시스템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은 회계스캔들로 다소 빛이 바랬지만 80년대 이후 20여년 동안 미국의 기업시스템은 정말 세계 최강이었다. 월가도 이같은 평가에 동의한다. 숱한 기업들의 회계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그것은 단지 몇개의 썩은 사과일 뿐, 대다수의 기업들은 건전하다"(골드만삭스의 에비 코엔)고 주장했다. 컨퍼런스보드의 기자회견장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문제제기가 바로 이같은 강한 시스템을 만드는 동력이란 사실이다. 사실 컨퍼런스보드가 내놓은 대안이란 것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만병통치약도 아니지만 그 대안을 내놓기까지 벌어졌던 숱한 주장과 반론만으로도 미국의 기업시스템은 한단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흐르는 물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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