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도, 미국도 모두 친구…'중동 비둘기' 카타르 왕실[글로벌 스트롱맨]

'국제사회 고립' 하마스에 대화창구 역할
중동 최대 미군기지 구축…美와도 맹방
중동위기 때마다 중재 자처…'아랍맹주' 사우디와는 불편
하마스와의 관계 설정, 카타르에도 과제
  • 등록 2023-11-25 오전 11:00:00

    수정 2023-11-25 오후 12:48:54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나흘간 교전 행위를 중단했다. 지난달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전쟁이 시작된지 48일 만이다. 하마스에 억류됐던 인질 50명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 150명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사진=AFP)


파투날 뻔한 협상 살린 숨은 공신

이 같은 긴장 완화엔 숨은 공신이 있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을 비롯한 카타르 정부다. 이번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 카타르는 카타르 도하에서 밀고 당기는 협상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병원 공격으로 협상이 파투날 위기에 처했을 때 타밈 국왕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운데서 협상 불씨를 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협상 타결 후 발표한 성명에서 타밈 국왕을 언급하며 사의를 표했다.

카타르가 국제사회에서 대화를 이끌어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카타르는 2021년에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사이에서 미군의 아프간 철군 협상을 중재했다. 이 같은 중재 외교를 두고 카타르를 ‘중동의 제네바’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타밈 국왕은 지난해 프랑스 주간지 르푸앙과 한 인터뷰에서 “카타르의 외교 정책은 이견을 하나로 모으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당사자를 돕고 중동과 다른 지역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백악관에서 만난 타밈 국왕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AFP)


하마스에도, 미국에도 버릴 수 없는 우방

카타르가 중동 외교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건 서방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모두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덕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안드레아스 크리그 교수는 “카타르는 다른 어떤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방식으로 양측(미국·하마스)과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관계와 갈등을 독점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CNN에 설명했다.

카타르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간 밀월은 수십년 간 이어져 왔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라고 불리는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탄압을 받을 때 이들을 품어준 곳이 카타르다. 20세기 초만 해도 가난한 어업국가였던 카타르는 1939년 석유 발견 이후 빠르게 성장했는데 국가 교육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데 무슬림형제단 엘리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타르 왕실의 스피커라고 할 수 있는 알자지라 방송에도 무슬림형제단 출신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하마스와도 긴밀한 관계다. 2007년 팔레스타인 내전으로 가자지구를 차지한 하마스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손을 내민 나라가 카타르다. 2012년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당시 카타르 국왕은 가자지구를 방문, 4억달러(약 5200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팔레스타인 내전 이후 가자지구를 방문한 외국 정상은 하마드 국왕이 처음이었다. 하마스가 대외 교섭을 위한 정치사무소를 도하에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다.

미국에도 카타르는 없어선 안 될 나라다. 카타르는 1996년 알 우데이드 기지를 지어 미군에 무료로 제공했다. 과거 중동에서 미군 작전 중심지는 사우디였지만 2000년대 초반 관계가 경색되면서 카타르로 병력을 대거 이동했다. 그 결과 알 우데이드 기지는 중동 최대 미군기지가 됐다.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카타르와 끈끈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전 카타르 국왕.(사진=AFP)


◇소국 카타르, 소프트파워로 홀로서기


카타르가 ‘중동의 비둘기’ 역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타르의 인구는 270만명, 그중에서도 카타르 국적을 가진 사람은 32만명에 불과하다. 면적은 1만1581㎢로 한국의 전라남도(1만2344㎢)보다 작다. 주변엔 사우디나 이란 등 지역 맹주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현재 카타르 외교의 기틀을 닦은 인물은 하마드 전 국왕이다. 그는 1995년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할리파 빈 하마드 국왕을 쫓아내고 즉위했다. 사우디와 가까웠던 아버지와 달리 하마드 전 국왕은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했다. 물리력으론 사우디에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우니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에 기반한 경제력과 함께 외교·학문·문화 등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게 하마드 전 국왕의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사우디를 위시한 수니파 아랍 왕국들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앙숙처럼 지냈지만 하마드 전 국왕은 이란과의 화해를 택했다. 카타르는 이란과 가스전을 공유하고 있는데 안정적인 천연가스 수출을 위해선 이란과 관계 안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마드 전 국왕의 통치하에서 카타르는 수단·리비아·예멘·시리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위기가 생길 때마다 중재자로 나서며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마드 전 국왕은 2013년 당시 33살이던 아들 타밈 현 국왕에게 왕위를 넘겨줬다. 한번 왕좌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지키는 중동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마드 전 국왕이 후원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정권 몰락의 후폭풍이란 해석도 있지만 타밈 국왕은 아버지의 ‘소프트파워 강화 정책’을 계승했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프간 전쟁 등을 해결하는 데 주력했다. 하마스가 도하에 정치사무소를 연 게 타밈 국왕이 즉위한 해다. 곧이어 탈레반에 도하에 대외창구를 개설했다. 최근엔 미국과 이란의 포로 교환 협정도 중재했다.

컨설팅 회사 스트랫포의 에밀리 호손은 “카타르는 땅도 작고 군대도 적다. 지정학적으로 분쟁이 잦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바데르 알사이프 쿠웨이트대 교수도 “역내 안정은 모두의 이익이며 특히 카타르처럼 큰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소국의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카타르의 소프트파워 강화를 주변 나라는 그리 반기지 않고 있다. 특히 자국의 패권이 도전받는다고 생각한 사우디는 1996년 하마드 전 국왕을 겨냥한 역(逆)쿠데타를 사주한 데 이어 2017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이집트 등과 함께 아예 카타르와의 국교를 끊었다. UAE 등도 카타르가 자국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보도를 하는 카타르를 언짢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교 사태 당시 사우디 등은 알자지라가 테러를 부추긴다며 카타르에 알자지라 폐쇄를 요구했다.

카타르의 소프트파워는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단교 사태로 식량 수입길이 막힌 카타르에 이란과 튀르키예가 손을 내밀었다. 카타르 자본의 투자가 활발한 튀르키예는 카타르가 사우디 등에 군사적 위협에 맞설 수 있도록 카타르에 군대까지 파병해줬다. 2021년 카타르와 사우디 등은 미국의 중재로 외교관계를 복원했는데 압둘칼레크 압둘라 뉴욕대 교수는 “단교는 카타르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그런 의미에서 카타르는 이겼다고 생각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2014년 카타르 도하에서 만난 마흐무드 압바스(왼쪽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타밈 카타르 국왕, 칼레드 메샤알 당시 하마스 수장.(사진=AFP)


이·팔 전쟁 이후 하마스와의 관계 설정 과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카타르엔 새로운 과제다. 교전 중단 협정을 중재하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하마스에 자금을 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카타르가 하마스와 가자지구에 지원한 자금은 10억달러(약 1조 3000억원)가 넘는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카타르가 이·팔전쟁이 끝나면 하마스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린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국민의 중요한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하마스를 테러단체라고 부르는 우리 친구들과는 생각이 다르다.…하마스는 평화를 믿고 평화를 원하지만 상대방도 평화를 믿고 더 현실적이어야 한다.” 2014년 타밈 국왕이 CNN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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