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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징후 고의적 은폐 가능성도 제기
NICE신평은 지난달 8일 해당 ABCP의 신용등급을 ‘A2’로 매겼다. 이후 ‘C’로 낮춘 지난 28일까지 단 20일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 이전에는 전혀 징후가 없었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신평사와 증권사 모두 인지하지 못했다면 사전에 이상 징조를 알고도 고의적으로 숨긴 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문제가 된 ABCP는 중국 CERCG가 발행한 회사채를 유동화해 만든 상품이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한화증권이 국내 기관투자가로부터 거래 제안을 받았고, 마침 NICE신평이 CERCG의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어 ABCP 신용등급을 받아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증권이 상품 기획을 처음부터 한 것이 아니다.
중국 투자 경험이 있는 자산운용사 채권 담당자는 “중국 국유기업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디폴트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전 징후가 있었을 테고 이번 거래에 관계된 누군가는 이를 알고 있었을 수 있다”며 “부도가 나기 전 서둘러 상품화해 처리하고 중간에 수익을 챙기려는 세력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진단했다. 다른 크레딧 업계 관계자도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거래 관계자 중 일부가 (부도 징조를) 숨기려고 했는지 원인을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손실 시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ABCP 채무불이행이 현실화되고 1000억원대 손실이 확정될 경우 책임은 누가져야 하는 것일까. 이해관계자간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아직까지 누구의 과실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일단 CERCG의 보증채 만기 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ABCP 발행 당사자인 한화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078020)과 투자사(현대차투자증권(001500)·BNK투자증권·KB증권·유안타증권(003470)·신영증권(001720) 등), NICE신평 등은 오는 4일 중국 CERCG 본사를 찾아 사태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이때 만약 CERCG가 지원 의지를 드러내 채무불이행 우려가 해소된다면 논란은 말끔히 사라지게 된다.
우선 한화증권은 회사채 발행을 주관하는 주관사가 아닌 중개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의무도 없고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한화증권 주선으로 해당 ABCP에 투자한 증권사나 채권형 펀드를 사들인 개인투자자 등의 원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심화될 경우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NICE신평은 ABCP의 신용평가는 투자자들의 리스크 관리 방법 중의 하나일 뿐 이번 사태의 전적인 책임을 물으면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실제 기업이 부도가 나더라도 사전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신평사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불공정행위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법적인 책임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ABCP의 실제 채무불이행으로 결과가 나올 경우 부도율을 중요시하는 업계 특성상 신용평가 신뢰도 하락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또 실제 처음 등급(A2)을 매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계단을 한꺼번에 낮췄다는 점도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한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NICE신평이 평가방법론에 맞춰 적정하게 등급을 부여했다고는 하지만 결과가 부도로 나왔다면 이를 감지하지 못한 평가방법론을 개선하는 게 가장 시급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