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저널리스트인 찰스 애런(Charles Aaron)에 따르면 1976년 FM 라디오가 미국에서 대중화되면서 록 발라드가 본격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는 1930년대 말 처음 송출된 FM 라디오가 약 40년 만에 AM 라디오의 수를 따라잡기 시작했을 때였다. 배드핑거(Badfinger)의 “Without You”,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Dream On”,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Free Bird” 등은 FM 라디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1980년대 말 글램 메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도 록 발라드였다. 글램 메탈은 대규모의 여성 팬덤을 형성한 처음이자 마지막 메탈 장르였다. 세바스찬 바크(Sebastian Bach)나 브렛 마이클스(Bret Michaels) 같은 ‘꽃미남’ 보컬리스트가 부르는 애절하고도 호소력 있는 노래에 여성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글램 메탈 밴드가 부르는 록 발라드는 일종의 ‘미끼상품’과도 같았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앨범을 구입하면, 그 노래 외에는 모두 메탈 음악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다. 다만 헤비메탈에 팝송의 요소를 도입한 글램 메탈 밴드들의 음악은 충분히 대중적이었기 때문에 록 발라드를 통해 유입된 팬들이 글램 메탈 장르에 빠져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부 로커들도 발라드에 거부감을 가졌다. 스키드 로우(Skid Row)의 세바스찬 바크는 록 발라드 히트곡 “I Remember You”가 발표된 지 30년이 되던 지난 2019년 야후 엔터테인먼트(Yahoo! Entertainmen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곡이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터프가이, 불량아, 메탈헤드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이 곡이 “창피하다”고 말한다.
당초 세바스찬 바크와 멤버들은 “I Remember You”를 데뷔 앨범 ‘Skid Row’에 수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밴드 매니저였던 독 맥기(Doc McGhee)는 앨범 녹음 리허설에서 이 곡을 듣고 “앨범에 넣는다”고 선언했다. 신인 밴드였던 스키드 로우는 키스(KISS), 본 조비(Bon Jovi), 머틀리 크루(Motley Crue) 등 록의 전설들과 함께 작업해 온 맥기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심지어 빠른 템포와 공격적인 기타 리프로 유명한 스래쉬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마저도 1988년에는 느린 템포의 발라드로 시작하는 “One”을 발표했고, 1991년에 내놓은 ‘Metallica’ 앨범에는 “The Unforgiven”과 “Nothing Else Matters” 두 곡의 발라드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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