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블토경]법정화폐와 암호화폐의 화폐경제학

  • 등록 2019-01-12 오전 10:15:00

    수정 2019-01-12 오전 10:15:00



암호화폐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접목시킨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와 그 생태계가 작동하게 만드는 토큰 이코노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길잡이가 절실합니다. 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프로젝트인 레밋(Remiit)을 이끌고 있는 정재웅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수석 토큰 이코노미스트가 들려주는 칼럼 ‘블(록체인)토(큰)경(제)’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정재웅 레밋 CFO] 화폐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위인 초상화가 그려지고 화폐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 혹은 서비스의 가격이 명시되어 있는 종이가 한 사회 내에서 화폐로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그 화폐의 가치가 정부와 중앙은행에 의해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며 이 믿음은 그 화폐를 가치의 척도, 가치의 저장, 교환의 매개, 그리고 국가 지불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폐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화폐는 한 경제 체제 내에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즉 커피 한 잔이 사천 원이고 냉면 한 그릇이 만 원이라는 사실은 냉면 한 그릇이 커피 두 잔 반에 상응하는 가치를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화폐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가 갖는 가치를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다. 만약 화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가치의 측정과 비교는 난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치의 척도 기능에 가능한 것이 교환의 매개 기능이다. 즉 우리는 화폐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여 우리의 효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만약 가치의 척도로서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재화 혹은 서비스, 예를 들어 쌀 혹은 노동을 가치의 척도와 교환의 매개로 사용해야 했을 터인데,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는 명약관화하다. 이에 더해 화폐는 가치의 저장 기능을 갖는다. 우리는 화폐를 이용하여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하고, 이를 통해 부를 저장하거나 혹은 이전한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사실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더라도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귀금속과 법정화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점이 바로 화폐의 마지막 기능인 국가 지불의 수단이다. 한 경제 체제 내에서 화폐가 사용되고, 그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은 바로 이 마지막 기능에 의존한다. 즉 화폐를 이용해 우리는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국가는 이러한 세금을 이용하여 국가 경제를 운용한다. 이 과정에서 화폐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경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주체는 정부다. 만약 올해의 화폐 가치와 내년의 화폐 가치가 심각하게 차이가 난다면, 정부 재정의 운용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의 동작에 있어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혹은 2000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다. 화폐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화폐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여 화폐의 네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다양한 정책 도구를 사용하여 화폐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예를 들어 경기가 과열되어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해질 경우에는 이자율을 상승시켜 유동성을 감소시키고,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이자율을 하락시켜 시중에 유동성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정책 운영을 통해 중앙은행은 화폐량과 화폐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이자율이 극단적으로 낮아 금리 조절을 통한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에는 중앙은행이 시중에 화폐를 직접 공금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화폐는 단순히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고 금융거래에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라 한 국가 경제 전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제 정책의 도구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발행된 백서를 통해 금융 중개기관의 개입이 없는 당사자 간 금융거래를 지향하는 비트코인의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그 결과 2009년 1월 3일에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이러한 백서를 쓰고 많은 사람들이 백서의 내용과 비트코인에 공감한 이유는 바로 상술한 중앙은행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즉 금융위기 상황에서 경제 침체를 막고 경제럴 활성화 시키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량을 증가시켰고, 그 결과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운용도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까지 구제할 수는 없었고, 그 결과 정부와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증폭되었으며, 그 결과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사람들의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바로 가치의 안정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분명 사토시 나카모토의 아이디어는 혁신적이다. 하지만 그는 시장 참여자들의 투기적 광기와 행동이 비트코인의 급격한 가치 변동을 야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신하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투자자산으로서 기능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러한 가격 변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험성이 큰 투자자산으로 간주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법정화폐의 대체를 목적으로 했고, 이 상황에서 급격한 가격 변동은 분명 문제가 된다. 급격한 가치 변동은 암호화폐가 가치의 척도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하고, 가치의 척도로서 기능을 하지 못함은 곧 교환의 매개와 가치의 저장 기능도 원활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암호화폐는 국가 지불의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없다.

결국 암호화폐의 낙관적 기대는 붕괴되었고, 그 결과는 우리가 현재 목격하는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토큰 시장의 침체다. 하지만 이게 미래를 비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지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버블이 생겼다가 무너졌지만, 그 결과로 우리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이라는 글로벌 IT 기업이 제공하는 플랫폼을 향유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꿈은 백일몽으로 끝났지만, 블록체인이 제시하는 분산원장 기술과 스마트 계약은 분명 인터넷에 버금가는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이다. 인터넷 버블이 끝난 이후 FAANG 이 나와서 우리의 일상을 혁신한 것처럼 분명 지금 세계 어딘가에서는 블록체인 기술로 우리의 일상을 혁신할 꿈을 꾸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화폐의 꿈은 끝났지만, 혁신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소셜 댓글by LiveRe

많이 본 뉴스

텐트가 필요 없는 서울캠핑장

왼쪽 오른쪽

이데일리

  •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
  •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발행인 곽재선 I 편집인 김형철
  •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