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남북군사합의, 先군비통제·後신뢰구축?

  • 등록 2018-10-21 오후 1:50:47

    수정 2018-10-21 오후 1:56:46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9월 18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와 함께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미·러간 중거리핵전력제한협정(이하 INF)은 국제정치사에서 성공적인 군비통제(Arms Control)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불신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냉전시기인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협정입니다.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km의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냉전 시대 군비경쟁을 종식시킨데 일조한 이 INF의 파기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20일(현지시간) 11·6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원유세를 위해 네바다 주 엘코에서 취재진에 “모스크바(러시아 정부)가 합의를 위반했다”면서 “우리도 해당 무기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억제력 기반 ‘공포의 균형’→군비통제를 통한 협력안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소련을 위시한 공산 진영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했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의 위력을 본 소련은 핵 개발에 골몰했습니다. 이에 더해 소련은 1957년 인공위성을 처음으로 쏘아올려 핵무기를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 보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됐습니다. 1962년 이후부터 소련의 군사력이 증가하면서 미국의 전략적 우위는 약화됐습니다. 특히 당시 미·소 강대국은 동맹국들에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확장된 억지(extended deterrence)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억지는 자신이 힘을 행사할 수 있음을 나타내면서 적이 공격을 통해서 얻는 이익보다 보복으로 입게 되는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해 일정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소련이 동유럽 지역에 핵무기 배치를 늘리면서 유럽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핵 억지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던 것입니다.

게다가 억지 전략은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능력에 의존하는 것인데, 이는 적국의 일차 공격을 견디고 파괴적인 대응 공격으로 보복할 수 있는 2차 공격능력을 요구합니다. 결국 미·소 진영간 군비경쟁을 가속화시켰고, 핵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AD) 개념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억지는 냉전시대에 전쟁을 막기 위해 강대국들이 취한 정책으로 일부 ‘공포에 의한 평화’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냉전시대 내내 핵이 사용 가능한 무기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따라 강대국들간 또는 다자간 군비통제협상이 진행됐던 것입니다. 냉전시기 미·소간의 군비통제 노력은 핵무기의 위협을 줄이는 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대표적인 군비통제 협정이 앞서 언급한 INF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 입니다.

SALT가 각 무기들 수에 대한 상한을 설정한 것이라면, 그 이후의 START는 미사일과 핵탄두를 제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감축할 것을 제안해 ‘군비축소’(disarmament) 성격을 띕니다. 특히 지난 2010년 미국과 러시아는 START의 후속 포괄적 핵무기 감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까지 체결해 각각 보유 핵탄두를 1550개까지 줄이기로 합의한바 있습니다. 이밖에 포괄적인 핵실험금지협상(CTBT), 핵확산금지조약(NPT),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미사일 기술 통제레짐(MTCR) 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다자 군비통제 협정입니다.

남북군사합의, 초보적 수준 ‘운용적 군비통제’?

군비통제와 군비축소(군축)에 대해 학자들마다 견해가 달라 군축은 군비통제의 하위개념이라거나 혹은 그 반대라는 주장들이 있는데, 어쨌든 두 개념은 차이가 있습니다. 군비통제는 군비증강을 제한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군비수준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군축은 무기를 축소하거나 없애고자 하는 것입니다. 쿠르젤(Joseph Kruzel)은 이와 관련 “군비통제는 무기나 조약 가맹국의 안보정책들에 중대한 제한을 가하는 공식 협정이지만, 군축은 철학적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며 “군축은 모든 무기의 축소나 제거를 전제하며 전쟁 자체의 제거를 지향한다. 즉, 군축은 무기가 없다면 더 이상 전쟁도 없다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군축은 군비통제 다음 단계 정도로 판단됩니다.

군비통제는 양측 군사력의 운용과 병력·무기를 통제하고 합의사항 위반을 제재함으로써 전쟁위험과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19 판문점선언을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를 바탕으로 현재 남북 관계는 초보적 수준의 ‘운용적 군비통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운용적 군비통제는 병력의 이동·훈련·배치 등 군사태세 관련 쌍방이 조정·참관·통보하도록 합의함으로써 기습 가능성을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구조적 군비통제’ 단계로 군사력의 축소·제한·폐지 등으로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군축 개념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군비통제는 험난한 과정…신뢰구축 조치 선행돼야

이같은 군비통제는 신뢰구축 조치(CBM)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군사훈련의 사전 통고와 군사훈련에 대한 상호 참관단 파견, 군사교류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DMZ) 공동유해발굴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로 신뢰구축 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남북 군사당국간 핫라인 운용도 제한적입니다. 북한군 훈련시 우리 측에 대한 사전 통보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비핵화 약속만 했을 뿐, 여전히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번 남북군사합의가 성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특히 상호적대행위금지구역 설정 등에 대한 검증·사찰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 간의 INF나 START 등 군비통제협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는 서로 정찰위성과 고고도 정찰기 등을 동원해 상대를 검증하고 감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이번 군사합의에 따라 대북 감시·정찰 활동이 일부 제한을 받는건 사실이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군이 운용하는 금강·(RC-800) 및 새매(RF-16) 정찰기를 통한 영상정보 수집은 일부 제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육군이 운용하고 있는 군단급 무인항공기(UAV)의 작전 영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미군의 고고도 유·무인 정찰기와 인공위성 등을 중첩 운용해 북측 동향을 파악하겠다는 겁니다.

또 구조적 군비통제 단계에선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배치돼 있는 군사력을 뒤로 빼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쉽지 않습니다. 공군 비행장 이전과 제주해군기지 및 경북 성주 사드 기지 배치 과정에서 보듯, 더이상 군 부대는 지역주민들로부터 환대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전방 철책을 따라 배치돼 있는 수십만의 병력과 무기들을 후방으로 물린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신뢰구축 조치→운용적 군비통제→구조적 군비통제→군비축소의 과정은 과거 유럽에서도 그렇고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만큼 험난하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군비통제가 특정 정권의 생색내기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그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북한 비핵화가 완성되고 서로간 충분한 신뢰가 쌓인 후 군비통제 얘기를 꺼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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