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 베테랑으로 떠 오른 육류유통 17년 관록의 전문가

나호섭 <갈비둥지>의 (주)미트프라임푸드시스템
  • 등록 2009-08-06 오후 8:33:00

    수정 2009-08-06 오후 8:33:00

[이데일리 EFN 이덕철 객원기자]
한우와 흑돼지 결합 <두근반 세근반> 론칭에 크게 긴장

왜 이렇게 초조할까. 이상한 기분이다. 감정의 기복이 일렁인다. 불안감이 서서히 다가온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괜찮을까.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별의 별 생각들이 일어서다 스러진다.
창문 밖에는 새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무슨 징조일까. 하필 이 시간대에 웬 비란 말인가. 뜨악한 기분마저 겹친다. 마음은 더 조마조마해져 간다. 사무실 2층에서 매장 1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 별일이다 싶다. 17년을 한 우물만 판 관록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다. 결국 1시간이 지난 저녁 7시쯤 직원의 ‘만석’ 보고를 받고서야 내려갔다.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영남권에서 육류유통과 고기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주)미트프라임푸드시스템의 나호섭 대표(42)는 난생 처음 당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다.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오랫동안 수행해 오면서도 항상 자신에 차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난 3월 초, 나 대표는 한우와 흑돼지를 결합한 신개념 고기 전문음식점 <두근반세근반> 브랜드를 대지 826.45m2(250)평에 매장 264.46m2(80평) 규모로 론칭했다.
한우는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등급을, 흑돼지는 남원에서 공수되는 고급육을 내걸고 야심차게 오픈한 것이다. 하지만 오픈 당일 정작 본인은 고객들의 방문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부담감과 초조함으로 매장이 있는 1층으로 성큼 발길을 옮겨 놓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고기의 뼈 바르는 것에서부터 분할 그리고 육가공 분야까지 다 섭렵해 온 지 벌써 17년째가 되어간다. 그리고 고기 전문 프랜차이즈 사업도 5년차 들어서고 있다. 가맹점이 150여 개에 이르러 음식점 오픈에는 이력이 날 정도다. 그런데 유독 <두근반세근반> 오픈 당일은 예외였다. 예전에 잘 모르던 시절에는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겁 없이 덤벼들고 밀어붙였는데 이제는 이런 저런 내용들을 알게 되고 학습을 통해 다양한 지식들을 인지하게 될수록 음식점 오픈과 운영에 대해 쉽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많이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는 느낌이다.”

육류 전문기업으로의 특화로 영남권에서 인지도 높아

현재 나 대표는 호텔, 레스토랑, 공항 등을 대상으로 한 육가공 육류유통 사업과 고기 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 ‘갈비둥지’ 150여 개 운영, 소자본 창업 브랜드인 ‘고맛집’ 운영 등 고기 전문 기업으로의 특화를 통해 영남권 외식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린다.
그의 이름 앞에는 세 개의 광(狂)자가 수식어로 붙는다. 학습狂, 벤치마킹狂, 일중독狂 등이 그것이다. 이 ‘3狂’은 나 대표 성공 배경의 함축적인 카테고리다.

언제부터 그는 이 ‘3狂’을 그의 삶에 문신처럼 새기고 다니기 시작했을까. 그와 촬영 스튜디오에서 마주했다. 눈빛이 형형하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야전사령관의 투지와 강렬함이 배어있다. 흰자위의 충혈된 실핏줄은 잠이 부족해서 일게다.
동공의 일직선은 자신감과 솔직함을 동반하고 눈 주위를 흐르는 성성한 기운은 기개가 만개하고 있음을 전한다. 언행일치를 신봉하는 이들의 손동작은 조심스럽다. 요란은 빈 수레와 동격이어서다. 나 대표에게서 자신감과 함께 절제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건 그가 미래를 가치로 삼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사회의 첫발을 군제대후인 24살 때 시작한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건설 분야의 중장비 대여업에 관심을 갖고 자격증 획득에 전념한다.
1년 동안 학원과 실기를 거쳐 무려 8가지에 이르는 자격증을 따낸다. 그러면서 나 대표는 시간을 쪼개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이동식 ‘오뎅 가게’가 그것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방식이어서 창피함의 극복이 더 힘들었다.

중장비 면허 8개, 오뎅 가게, 액세서리 판매도 경험해

오죽했으면 초창기 시절 부끄러운 마음에 오뎅이 실려 있는 차의 뒤쪽 커튼을 올리지 못해 장사를 못할 정도였겠는가. 그러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업의 특성상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템을 액세서리로 변경했다. 제품들을 받아서 자리 잡고 펼쳐만 놓으면 알아서 사 가는 것을 눈여겨 본 그의 선택이었다. 6개월가량 영업을 하면서 월급쟁이보다 나은 수입을 올리고 있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취직이 됐으니 한 번 놀러오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친구회사의 방문은 건설 중장비 업계의 입문을 눈앞에 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삶의 목표를 100% 수정하게 만든다. 친구 회사는 육류유통업을 하는 곳이었다. 친구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보게 된 그 현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지방을 제거하는 장면도 새로웠고 납입 단가와 출고 단가의 시세 차이도 놀라웠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 직업으로 조금만 노력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구나하는 강렬한 ‘필’을 받는다. 유통 사업의 매력에 빠져 든 것이다.
“친구가 취직한 육류 유통회사에 들렀다가 기분이 묘해졌다. 이 직업을 갖게 되면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갈등이 벼락같이 일었다. 중장기 대여업을 할 생각으로 자격증을 8개나 딴 상태였는데 마음은 오히려 육류 유통업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살고 있는 건물 옥상에 냉장고 하나만 놓으면 돈을 엄청 벌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운명의 나침반은 그렇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당장 친구에게 부탁해 육류유통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러나 어디 처음부터 호락호락한 일이 있던가. 6개월을 근무하면서 고기 손질에 관한 본질적인 업무는 배우지도, 거의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 회사 놀러갔다가 육류유통업에 ‘필’ 꽃혀

입사 조건상 고기 배달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안을 내린다. 그는 결정이 빠르다. 포기도 같은 맥락이다. 안 되는 일을 붙잡고 끙끙대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그래서 대안 마련 또한 신속하다.
집중력과 치밀함 그리고 부지런함은 그의 인생의 총론을 완성시켜주는 각론들이다. 사회에 들어서면서 이들의 교집합은 서서히 정교하게 똬리를 틀며 그의 이미지로 형태를 잡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거래처 某 사장한테 찾아가 정식으로 장사를 하고 싶으니 무보수로 배울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솔직 담백한 모습에 흔쾌히 허락을 한 사장 밑에서 6개월을 고기에 대해 배웠다.
기름을 제거하고 분할하고 가공하는 법 등을 익혔다. 그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습작공부였다. 26살 되던 해 8월, 결혼과 동시에 배운 실력을 경험 삼아 대구 대명동에 쪽방이 딸린 66.12m2(20평) 남짓 되는 정육점을 오픈했다.

개인 사업의 시작이자 훗날을 도모하는 전초기지였다. 개인 정육점으로 조금씩 가게를 성장시켜 가고 있던 어느 날, 유통업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잡게 된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 온 것이다.
고기를 가르쳐 주었던 거래처 사장이 도매업을 그만 두면서 거래처를 그에게 넘겨 준 것이다. 한 달 뒤 사장의 친구도 역시 같은 이유로 그만두면서 그를 찾았다. 순식간에 슈퍼마켓, 정육점 등 20여개의 거래처를 가진 유통업자로 변신했다.

우연히 찾아 온 육류유통에 냉동차서 잠 청하기 일쑤

정육점을 하기 위해 산 냉장고는 거래 물량을 저장하기엔 턱 없이 작았다. 그래서 냉동탑차에서 잠을 청하기도 여러 날이었다. 고기를 다 저장할 수가 없어 냉동탑차에 싣고 시동을 걸어둔 채 차에서 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냉동탑차의 소음이 커 대구 앞산 밑까지 가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육류유통업에 뛰어들면서 1년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새벽에 일어나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는 시나브로 서산을 넘어가곤 했다. 직원도 혼자에서 3~4명으로 늘어났다. 사세가 점차 확장일로에 있던 2년차 초여름 어느 날, 그는 날벼락 같은 얘기를 동종업자로부터 듣게 된다.
정육점과 육류유통업으로 번 돈 8000만원을 다 쏟아 부어 납품했던 슈퍼마켓 3개가 부도가 난 것이었다. 힘이 쭉 빠졌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부도 난 슈퍼마켓을 다녀 온 뒤 오히려 담담해졌다.

포기하는 게 더 속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벌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위안했다. 부도 여파에도 불구하고 정육점과 육류유통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해 나가고 있었다. 거래처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대구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 등을 거의 휩쓸다시피 할 정도로 그가 납품하는 고기의 질과 양 그리고 다양한 제품들은 인기 절정이었다.
그 당시 대구는 삼겹살, 돼지 갈비 등 부위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고기의 제품군이 다양화되어 있지 않았다. 제때 구하기 어려운 부위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이미 그는 레스토랑 시대가 대구에도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고 서울 마장동 등을 통해 유통 경로를 다양하게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예상했던 대로 팔공산 주변과 수성 못 주위에 카페형 레스토랑과 예술성이 가미된 고급 고기음식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져나갔다.

대구시내 레스토랑, 호텔, 공항 등 고기 납품 휩쓸어

그는 성실하고 열심히 능력있게 일 잘하는 젊은 육류유통업자로 인정받고 그 자리를 확실하게 굳혀나간다. 그 당시 히트쳤던 T본 스테이크나 양갈비(고기), 안심 등은 그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4년차에 그는 레스토랑 오픈을 목표로 한 부지991.74m2( 300평)을 대구 본리동에 마련했다.

“고기 관련 장사가 나한테는 천직과도 같았다. 일하는 게 좋았고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는 게 신이 났다. 아침 새벽에 나와 공판장의 물건을 작업해 납품하고 서울 마장동에 가서 고기를 알아보고 고객들에게 최상의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대구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레스토랑과 고급호텔에 납품할 정도로 자부심도 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카페 겸 레스토랑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됐다.”
1년 뒤 그는 본리동 부지에 카페형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그는 치밀하다. 메모노트가 그의 손을 떠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적어 놓은 정보는 그의 아이디어의 샘이자 보고다.

1년이 지나면 미니노트 12권과 이를 총 정리한 정보의 집합체인 한 권의 특급 정보지가 탄생했다. 서울 근교 양평, 미사리 등지로 벤치마킹을 수차례 다녀왔음은 물론이다.

치밀한 일처리와 부지런함은 성공의 밑바탕

이 당시부터 그는 벤치마킹의 위력을 실감하고 거의 광적인 수준으로까지 발전을 이어가게 된다. 카페형 레스토랑은 대박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매출이 고르게 오르는 점포로 자리 잡아 나갔다.
그의 부지런함과 집중력은 사업 확장과정에서의 부실화와 질적 저하를 막아내는 방부제 역할로 작용해 왔다. 아침 일찍 공판장에 나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어떤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하고자 하는 일을 분해 내지 해체시켜 그 속내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몰입한다.

집중력은 해결사들이 갖는 능력의 피사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집중력은 도드라진다. 그의 집중력은 평면적이다. 다양한 지적 결합이 우선한다. 여기에다 각종 정보를 거르고 꿰매어 퍼즐로 엮어내는 기능적 협업이 뒤따른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적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이면에는 이들 순기능의 제대로 된 작동이 있었다.
나 대표는 이어 사세를 꾸준히 늘려나간다. 직영으로 운영했던 정육점을 5개로 확장했다.

그는 30~31살 즈음에 카페형 레스토랑, 육류유통업, 직영 정육점 5개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육류유통 도매업 회사인 정원축산을 창업 7년째 되던 해 (주)미트프라임푸드시스템으로 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인 수입육 도매업에 뛰어든다. 그는 수입육 시장에 뛰어들자마자 영업 방식을 차별화했다.
우선 그는 대부분 용차를 써서 물건을 받았던 일반 업자들과는 다르게 직접 냉동차를 구입해 스스로 실어 날랐다. 비용면에서나 고기 구입 방법에서 월등히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새벽 5시 10톤의 냉동탑차 몰고 직접 수입육 거래

수입육을 다루는 냉동 창고가 많이 몰려 있었던 경기도 일대를 10톤 냉동탑차를 몰고 새벽 5시쯤 도착해 물건을 싣고 다시 대구로 돌아올 때는 마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신이 났다.
그의 두 번째 비상을 알리는 기회 역시 아주 우연찮게 다가온다. 고기를 납품하던 한 음식점 주인이 어느 날 자신을 붙들고 영업이 잘 안된다며 울상을 짓는 것을 계기로 양념소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며칠 후 직접 제조한 양념고기를 납품했다. 다음날 찾아가 반응을 살피자 종전과는 아주 판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손님들이 종전보다 두 배로 늘어나고 주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순간 아!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양념갈비 탄생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차별화를 위해 ‘왕갈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만 해도 대구에는 삼겹살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갈비라 해도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다.
나 대표는 살이 제대로 붙은 왕갈비로 출사표를 던졌다. 프랜차이즈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갈비둥지’의 모태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나 대표는 먼저 자신의 카페를 개조해 왕갈비 전문점 오픈을 구상했다.

순발력으로 시작한 대박 상품 ‘갈비둥지’의 탄생

하지만 그런대로 잘 나가는 카페를 왜 뒤엎고 아직 상품가치로서 증명이 안 된 갈비 집을 하려고 하느냐며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다들 반대했다. 하지만 확신이 선 나 대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일단 카페 옆 주차장을 개조해 18개 테이블을 들여놓고 영업을 시작했다. 예상을 뛰어넘었다. 하루에 200만원이 넘게 팔려나갔다. 카페 1층과 2층의 인테리어를 다 부수고 고기집으로 개조했다.

하루에 400만원이 넘게 매출이 올랐다. 카페 당시보다 두배로 매출이 증가한 것이었다. 바로 5년 전의 그림들이다. 갈비둥지는 철저한 물류 프랜차이즈로 시작을 해 가맹비, 교육비, 로열티 등을 전혀 받지 않는다.
요즘 같은 불황의 시대에 적합한 프랜차이즈라 할만한 것이다.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가맹점 개설문의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3년만에 120개의 가맹점을 오픈시킬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현재는 150여 개의 가맹점이 성업 중이다.
육류 가공공장에는 50여 명의 직원이 매일 직접 손으로 고기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최근에는 이현공단 안에 실 평수 661.16m2(200평) 규모로 가공공장을 확장 이전해 설비를 완비한 데 이어 HACCP 인증 획득단계에 있다.

“맛있는 양념소스를 만들기 위해 소스를 만들다 버리고 또 만들고 버리기를 수백 번 했다. 얼마나 이를 붙들고 매달렸는지 간장 제조회사별로 맛을 구별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결국 양념소스의 맛에 승부를 건 게 주효했다.”
육류유통 도매업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으로의 확장은 나 대표를 학습, 벤치마킹, 일중독의 狂으로 변신하게 만든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벤치마킹과 학습 狂

나호섭 대표는 뒤늦은 나이인 30세에 대학 문을 두드린데 이어 3년간 대학 강단에도 섰다. 강의를 계속 해보고 싶지만 준비 없는 강의의 부실화를 우려해 일단 본인의 공력쌓기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인사관리와 조직론에 대해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정직원만 90명에 이르러 주먹구구식 조직 운영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 벤치마킹 투어도 이미 주변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성이다. 외식업과 고기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 도움이 될 만하면 국내는 물론 해외원정에도 반드시 참여한다.

이를 통해 본인 업장에 접목시킬 수 있는 활용방안을 만드는 이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맺은 인맥은 그가 사업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아이디어와 조언 그리고 충고 등을 얻는 또 다른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가 매장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목은 비용보다 뜨거운 열기다. 매장에 꽉 찬 손님들보다 더 화려하고 멋있고 예술적인 인테리어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매장에 꽉 찬 손님만큼 훌륭한 인테리어는 없다”

이 소중한 진리도 벤치마킹과정에서 얻은 보물 중 하나다. 빈자리가 없는 식당을 만든 후 비용관리를 해도 늦지 않다는 것.
“벤치마킹 투어를 다니면서 외식업의 매력을 충분히 알게 됐다. 종합예술과도 같은 외식업을 운영하는 많은 종사자들이 각각의 노하우를 가지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현장을 학습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다. 그리고 이 직업이 나에게는 천직이라는 것을 벤치마킹을 다니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일중독 열기는 오는 상반기 안에 제 2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출시로 이어질 전망이다. 주점을 결합한 흑돼지 전문점이 그것이다. 165.29m2(50평) 규모의 매장을 예상으로 하고 있고 흑돼지 갈비, 모둠구이, 묵은지 전골, 만두 등의 메뉴가 예정돼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스스로 동치미, 물김치 등 음식 만드는 것을 즐겨 좋아하고 상품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따른다. 최근에 론칭한 가공식품 브랜드인 <맛寶庫>의 탄생도 이러한 그의 끼에서 발현됐다.

외식업계 처음으로 상장기업 되는 것이 목표

이곳에서는 장아찌, 명이나물, 포장갈비, 양념갈비 등 절임류와 육류가공품을 위주로 판매할 계획이다.
나 대표가 육가공 유통사업과 프랜차이즈 사업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문은 무엇일까.
“중소기업 사장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을 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는 만큼 사업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항상 학습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주)미트프라임푸드시스템을 외식업계 최초의 상장기업으로 일구는 것이다. 그의 희망사항에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7년간 육류전문가로 일관되게 한 우물을 파 온 그의 집념과 고유의 영역에서의 끊임없는 학습과 배움에의 열정이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서서 아닐까. 하지만 목표는 목표일뿐이고 성취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업이다. 그가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 ⓒ 프랜차이즈 창업 체인 가맹 사업 네트워크 " 이데일리 EF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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