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대비태세 문제없다지만…남북군사합의 '후폭풍'

  • 등록 2018-10-14 오후 2:18:37

    수정 2018-10-14 오후 5:34:36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버트 맥마스터(Herbert R. McMaster)는 기갑 병과 출신의 육군 중장이었습니다. 현역 장성이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된 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콜린 파월 이후 30년 만의 일이라 화제가 됐습니다. 맥마스터는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참전한 다수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소령으로 복무할 당시인 1999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제출한 논문에서 베트남전을 패배로 이끌었던 선배 지휘관들을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그들이 대통령에게 정확한 정보와 의견을 주지 않음으로써 베트남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허버트 맥마스터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저서 ‘임무의 방기’ 표지
그는 논문 일부를 발췌해 ‘임무의 방기’(Dereliction of Duty)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맥마스터는 이 책에서 “베트남전은 월남의 전장이 아닌 한참 이전부터 진작 워싱턴 D.C에서 패배했다”고 서술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군에 대한 불신과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무지, 보신에 급급했던 합동참모본부 지휘부의 무능이 베트남전의 패배 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맥마스터는 이를 직무유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맥마스터는 이 책을 통해 민간 관료들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전쟁을 하는 것은 군인들이지만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군통수권자와 관료 등 정치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군의 전문성을 강조했습니다. 정치권에서 베트남전 참전을 결정했다면, 이를 수행하는 작전(Operation) 단계는 군의 역할로 전장에서 부하들이 죽지 않도록 잘싸워 이기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임무라는 것입니다.

9.19 남북군사합의 논란

지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킨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한 반면, 야당 등 일각에선 북한은 변한게 없는데 우리 군만 ‘무장해제’ 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지난 5일 박한기 신임 합동참모의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거치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박한기 합참의장 보직신고식에서 “판문점선언에서부터 이번까지 쭉 일관되게 북한이 NLL을 인정하면서 NLL을 중심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공동어로구역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NLL을 북한으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겠다 하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며 “그 분쟁의 수역이었던 NLL을 이제는 정말 명실상부하게 평화의 수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대전환”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문 대통령 말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발표한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문에는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라고 돼 있습니다. 이를 보도한 북한 매체들 역시 서해 북방한계선 즉, NLL(Northern Limit Line) 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썼습니다. 남북한 정상이 나란히 앉아 서해 NLL 표현이 담긴 합의문에 서명하고 이를 북한 매체들이 그대로 보도하면서 북한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습니다. 그동안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고 NLL 이남에 ‘서해해상군사분계선’, ‘서해경비계선’을 자의적으로 설정해 자신들의 관할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北, 서해 NLL 인정 여부 도마위

하지만 그 이후에도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는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판문점 선언 이후 10년 6개월만에 열린 지난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남북은 공동보도문에 합의한바 있는데, 이를 설명했던 당시 국방부 고위관료와 협상을 주도한 현역 장성은 NLL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북측은)판문점 공동선언에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이라고 그대로 말했다. 그 선(NLL)에 대체하는 다른 용어를 쓰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확인결과 북측 공동보도문은 “쌍방은 군사적 충돌이 원인으로 되는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문제, 서해 열점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문제…”로 돼 있었고, 북측 수석대표가 이를 그대로 읽었습니다. 우리 측 공동보도문에 ‘서해 NLL 일대’라고 표기된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열점수역은 분쟁수역이라는 의미로, 여전히 북한의 NLL 관련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지난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2일 합참 국정감사 과정에서 나온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합참의 비공개 보고내용을 소개하면서 “(합참은) 7월부터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이 주장하는 서해 해상계선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백 의원은 특히 “북한이 NLL을 무시하고 해상계선을 강조하기 시작한 7월에는 남북 간 군사합의 예비 회담이 시작됐다”면서 “남북 장성급 회담이 열리고 실무접촉이 열리던 무렵인데, 그 기간 동안 북한이 공세적으로 NLL을 불인정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서욱 합참 작전본부장은 북한이 NLL을 무시하고 공세적 활동을 하는 게 맞느냐는 백 의원의 거듭된 질의에 “NLL쪽에서의 단속 활동을 강화하고 상황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통신상으로 그런 사항들에 대한 활동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교신 과정에서 북측이 NLL이 아닌 해상계선을 주장하고 있다고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합참은 공식입장을 통해 ”남북 양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했고, 또한 9.19 군사합의서에서도 이를 재확인 한 바 있다“면서 ”이는 양 정상간 NLL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합참 비공개 보고에서 언급된 내용은 지난 7월 이후 서해상 최전선 지역 함선간의 통신과 관련한 사례를 설명한 것으로 군사분야합의서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軍, 대비태세 영향 있는데도 괜찮다?

물론 합참 주장대로 정부가 우리측 언론에 제공한 9.19 군사합의서에는 ‘서해 북방한계선’이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제3조에 딱 한번 포함돼 있을 뿐,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 관련 ‘붙임’ 합의서엔 NLL 관련 표현이 없습니다. 추후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꾸려 협의하겠다는 내용 뿐입니다. 상호적대행위 중지구역 설정을 위한 조항에 군사분계선(MDL) 표현이 수차례 포함돼 있는 것과는 대비됩니다. 앞서 북측이 사인한 9.19 군사합의서는 공개되지 않아 앞서 공동보도문 처럼 우리만 서해 NLL이라 표기하고, 북측은 서해 열점수역으로 돼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동안 이번 군사합의에서 남북간 NLL 관련 협의는 없었다는게 군의 입장이었지만, 대통령 발언 이후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고 하는 건 납득하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 해군 함정들이 서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 국지도발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해군]
게다가 북측 고기잡이배 등 함선들에는 민간인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탑승한다는게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북측 함선이 NLL이 아닌 해상계선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건 북한군이 NLL을 인정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정부와 군 당국은 ‘우발적 충돌 방지’를 강조합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0여회의 무력충돌 중 남측이 도발한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습니다. 북측의 계획적 도발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우리 군 당국이 이를 우발적 충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남북간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분명 이번 합의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 대비태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군 작전의 효과성이 평화 분위기에 편승해 정치나 외교 논리에 따라 왜곡·훼손돼서는 안됩니다. 정권의 안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일단 정책이 확정됐다면 이에 차질없는 대비책 마련을 위해 정확한 정세 판단과 대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번 남북간 군사합의가 어떤 경위를 통해 어떻게 결정됐는지 설명 한 번 않고 있습니다. 그저 ‘문제없다’는 식의 말만으로는 국민들이 더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맥마스터가 얘기했던 ‘임무의 방기’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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