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낭만이 어우러진 진양호 호반로

  • 등록 2012-06-28 오후 12:32:00

    수정 2012-06-28 오후 12:32:00

【진주=뉴시스】그날도 호숫가엔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오늘은 또 호젓한 호숫가를 달리니

당신과 세상 사람들의 인연이 참 아름답네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불면 바람 부는 대로

늘 이 길을 걷다 보면 가슴 시리도록

당신과 함께 늘 기억하고 싶답니다.

녹음이 짙은 초여름 후덥지근한 기온이 시작된 지 벌써 오랜 날이다.

VLUU L100, M100 / Samsung L100, M100


하루 일과도 지치고 열무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 끼니로 때우니 금방 눈꺼풀이 처지고 일의 능률이라고 별로 오르지 않고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휴대전화 소리마저 귀찮을 정도일 땐 경남 진주 사람들은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100리 길 진양호반을 가끔 찾아 스트레스를 날린다.

진주에 진양호 호반로가 생긴 것은 지난 1969년 생활용수와 농업 등 다목적 활용을 위해 남강댐이 들어섰고 2000년부터 댐 보강 공사를 거듭하고 나서 댐 건설이 마무리되자 호수 주변을 잇는 이 길이 생겨났다.

남강댐 기록물에는 호수면적 29.4㎢, 유역면적 2285㎢, 저수량 3억9200만t 규모로 경남 진주시 판문동 일원과 사천시 곤명면, 산청군 신안면을 둘러싼 지리산과 낙동강 수계 국내 최초의 다목적 댐이라고 적혀 있다.

호반로의 초입인 진양호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아름드리 편백나무에서 품어내는 피톤치드향과 소나무 숲길, 호수가 뿜어내는 물안개 사이로 불쑥 나타나는 자연석 하나는 이곳이 수몰 전 주민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망향의 글귀로 빼 꼭 적혀 있지만 지역민에게 또 다른 풍광과 삶의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50여년전 재일본 진주 민단이 고국이 그리워 심었다는 아름드리 벚나무 숲길을 지나 진양호 전망대에 들어서자 탁 트인 호수 끝자락엔 남해안과 지리산이 걸쳐 있고 옥색 물빛 사이로 비친 야트막한 산봉우리들은 분명히 육지임에도 다도해를 연상케 하는 섬과 섬으로 연결됐다.

이 지역에서 자란 청장년들과 한두 번쯤 이곳에 와본 외지인들도 진양호에 얽힌 추억 한두 가지쯤은 갖고 있으리라.

‘진주’라 하면 먼저 ‘천릿길’이라는 노랫가락 함께 ‘촉석루’와 ‘진양호’를 떠올린다.

70~80년대 중·고교생들의 단골 수학여행지로 각광 받았고 국내외 관광산업이 흔치 않을 당시 신혼여행지로 남부권 유일한 동물원, 호반 위서 즐기던 뱃놀이, 호수가 횟집들, 팔각정 등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모두 사라져 추억만 간직하게 됐다.

호반로 정상에서 옛 나루터를 연결하는 ‘365계단’은 1년 365일에 맞춰 ‘일년 계단’이라 불리고 청춘 남·녀들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내릴 때 이들의 사랑이 싹튼다는 설화에 지금도 자주 찾곤 한다.

남강댐에 있는 물 홍보관과 기념조형물관에 잠시 들러 국내 물 변천사를 익히고 홍보관 전망대에 오르면 길이 수백m의 남강댐과 진양호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의 풍광, 또 호반이 한눈에 들어오고 진주시 대평면으로 이어지는 진양호 일주도로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호반의 청량함에 숨쉬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차창 넘으로 펼쳐지는 호반 물빛과 낮은 섬들에 걸쳐 피어나는 물안개를 배경으로 적당한 장소를 골라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담고 나면 호반의 드라이브 여유에 가슴까지 설레기 시작한다.

호반로를 따라 10분 남짓 달렸을까 가로수로 심은 ‘자귀나무’는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쳤듯이 보라색 꽃을 피우며 끝없이 이어지고 코스모스와 개망초 등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문득 저 멀리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 주능선은 호반 물빛과 함께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진주시 대평·수곡면 사천시 곤명면 등 일부 지역 주민이 수몰로 말미암아 도로가 물에 잠기자 자연스레 도로와 3개의 교량이 생겨났고 이중 가장 긴 교량인 진수대교는 이 지역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진수대교를 건너 신당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 이르자 물길은 인간의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제공해 주는 듯 수많은 팬션과 음식점, 휴식 시설 등이 제각기 호반의 풍광을 껴안은 채 즐비하게 들어섰다.

호반의 물빛은 무청처럼 푸르다. 이곳이 그 옛날 무맛이 뛰어나 조상 대대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대평무우 산지 인지를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차 한잔을 나누는 호반의 여유는 잠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설계하기에 충분하다.

호반로의 물빛은 계속된다. 수몰 전 고향 마을과 지금쯤 아름드리로 자랐을 마을 앞 정자나무, 고향의 옛길 등 추억 속으로 사라진 그들 날의 풍경들이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걸어 나올 듯하다.

호반은 어느덧 바느실 고개에 이른다. 대한제국 시절, 이 고개가 바늘처럼 뾰쪽하고 실처럼 길다 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호반 조망이 잘 보이는 언덕배기에 팔각정 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수몰 전 진주시 가북면 중촌·하촌마을로 유달리 안개가 많이 껴 이 누각을 ‘물안개’ 휴게소라 명명했다.

누각은 이른 아침 여명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안개와 햇살을 가르고 밤새 호반을 지킨 잉어·붕어떼가 물길을 휘젓고 외다리로 선 백로가 고개를 갸우뚱 길손들을 맞이할 것이다.

휴게소를 지나 어느덧 대평교에 이른다. 수몰 전 옥방마을과 당촌마을을 건너갈 때 상촌마을 뱃가의 사공을 불렀지만 지금은 대평교를 이용하는 새 길이 났다.

대평교를 막 건너자 청동기시대 문화박물관이 호숫가에 버티고 서있다.

박물관이라면 흔히 도심지나 고궁에 소재 한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호반가에 자리 잡은 이유는 수몰 전 이 지역 유물발굴 과정에서 기원전 500년쯤으로 추정되는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 1만 2000여점이 대량 발굴된 것으로 지난 2009년 6월11일 개관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세계 4대 강 유역에서 발굴된 유적에 버금가는 유물이 전시됐다는 안내문과 함께 대표적 유적인 가지문 토기를 비롯한 토기류 150점, 석기류 250점, 옥 100여점 등이 전시 됐고 움짐체험, 토기체험장 등 남부권과 진주권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박물관 건너 나룻배 모양의 작은 둔치는 박물관 관람과 다른 또 다른 호반의 진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호수 안 자연스레 생겨난 사구들에 수양버들 가지가 물가에 비춰도 해 질 녘 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을 감상하거나 구름 한 점 없는 날 한밤에 아이들과 함께 와 별 보기가 그만인 곳이다.

호반의 끝자락인 호반로를 따라 지리산 자락을 품은 채 성철스님의 생가를 향하는 길은 지리산이 발원지인 덕천강에서 덕유산이 발원지인 경호강에서 수백 리를 달려온 물길이 한데 모인다.

성철 스님 생가에 도착해 스님의 유품들을 꼼꼼히 살펴본다. 무소유 삶을 사신 성철스님의 이야기를 나누며 욕심 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진양호 일주도로를 도는 데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어 맘 편히 느긋하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다. 중간에 차를 세워 쉬엄쉬엄 쉬기도 하면서 말이다.

중앙·남해고속도를 경유 진주 시가지에 진입하면 10분 이내에 호반로에 접근 할 수 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계절에 대한 감각도 잊고 있었다. 능소화를 보고서야 소서가 다가옴을 알았다.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담 밖으로 고개를 내민 능소화가 애처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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